별에서 온 남자와 별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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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llo, my stranger 27

SCIENCE AND LOVE 2016. 2. 27. 19:58




Hello, my stranger 27

 

 




 

#




 D-6



 

“세상 참 좋아졌어.”

“왜요, 누나?”

“비행기만 타면 어느 나라든 가고, 인터넷만 있으면 전 세계 사람들하고 실시간으로 얘기할 수도 있고.”

“…무슨 조선 시대에서 오셨어요? 뜬금없이 왜 그러세요.”

“아니 말이야, 여기서 택배 시켜도 하루 이틀은 걸리는데, 미국에서 여기까지도 3일이면 오더라고.”

“아아. 요즘엔 그렇죠. 근데 뭐 외국에서 받은 거라도 있으세요?”

“어? 어어, 그 미국에, 내 팬이 선물을 보냈더라고.”

“선물 받은 게 뭐 새삼스러우시다고..”

 

 

어제는 피곤하다며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내더니, 오늘은 바쁜 와중에도 표정이 좋아보이는 송이를, 범이가 계속 이상하게 쳐다본다. 생각하지 않으려는데 자꾸만 생각나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오늘 하루 일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거라면 뭐, 굳이 막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의 모습은 없지만 그를 생각나게 하는 것들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조금 어색하다.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하지 않았다. 나를 자신의 눈과 카메라 렌즈에 담고 있었을 그가 눈 앞에 떠오르고, 그가 사진 뒷장에 남긴 짧은 글자 몇 개에 웃음이 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밴 안에서도 잠도 안 자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깜깜한 창 밖만 보다 왔다. 몸이 피곤한 것도 잊은 오늘 하루를 마치고, 또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 앞에 발을 디딘다.

 

 

“아, 참. 다음주 월요일 스케줄 확인해보니까 오전에만 있더라구요.”

“그으래?”

“그 날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니. 그냥 쉬려구.”

“그 전에도 쉬는 날 있는데.”

“다 쉬면 안 돼? 뭔 상관이야. 빨리 집에나 가.”

“여태까지 쉬다 오셔놓구…”

 

 

꼬치 꼬치 캐묻는 범이의 뒤통수를 한대 때리려다 참았다. 짜증을 한 번 내긴 했지만 금세 기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래, 굳이 얘한테 짜증 낼 건 아니지. 다음주 월요일 오후에 스케줄이 없대잖아!


 

그 사람이 돌아오는 날, 뭐라고 반겨줘야 하지, 그 후엔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와 같은 고민은 아무리 해보아도 답이 없다. 그러나 막상 그 때가 오면, 그 때의 감정에 충실할 것 같다.



투덜대며 내일 스케줄에 대한 당부를 하는 범이를 손을 흔들어 돌려보내고 집으로 들어선다. 대문 앞에 서서, 일부러 보려 했던 건 아닌데 어제의 잔상 탓인지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우편함을 스쳤다.

 

 

“……?”

 

 

그리고 데자뷰처럼, 그 자리에 어제와 같은 우편물이 꽂혀져 있었다. 놀란 마음에 얼른 그것을 집어들었다. 아주 먼 곳을 날아온, 며칠 전을 살고 있는 그가 보내온 두 번째 소식. 봉투 겉면에 쓰여진 Do min jun 이라는 이름을 확인하고는 이걸 이 자리에서 뜯어볼까 하다가 방에 들어가 혼자 보고 싶어서 -지금도 혼자지만- 재빨리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집에 찾아온 손님도 아니고 한정판 신상 구두 택배도 아닌데 뭐가 그리 반가운지. 송이는 신발도 겉옷도 대충 벗어 놓고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왠지 전에도 이런 적이 있는 것 같다. 언제 그랬는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침대 모서리에 털썩 걸터앉아 봉투의 끝 부분을 조심스레 뜯는다. 그 안에 뭐가 들었든 혹시나 상처가 날까봐.

 

 

“……”

 

 

봉투 안엔 단 한 장의 들어 있었다. 샌 안토니오에 있는 동안 유일하게 함께 찍은 사진. 리버워크 다리 위에서 마주친 관광객들 덕분에 얼떨결에 찍게 된 사진이 송이의 손에 쥐어졌다.

 

카메라 앞에서 민준과 함께 있을 때 딱 2번, 연기도 가짜도 아니었던 순간. 어깨를 감싼 민준의 손, 그리고 그의 품에 기댄 자신의 모습이 아주 조금 어색해 보이긴 했지만 이상하게 그마저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마도 진심을 그대로 내보인 미소가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으으… 나 왜 이러니!!”

 

 

그대로 침대로 쓰러져 이불을 뒤집어 쓰고 감당이 안 되는 웃음을 참아보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 아무도 없는데 침대에 엎드려 발을 동동 구르며 앓고 있는 걸 엄마나 윤재가 보면 미쳤다고 할 게 뻔하다. 송이는 한참을 그러다 갑자기 뭐가 또 생각난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언제 그랬냐는 듯 헝클어진 머리와 표정을 정리하고는 방 밖으로 나간다.

 

 

“그게 어디 있더라…”

 

 

송이는 거실 한 켠에 거의 장식용으로만 쓰이는 책꽂이 앞에 서서 무언가를 찾았다. 제일 윗칸에 꽂힌 앨범 중 하나를 까치발을 들고 겨우 꺼내었다. 겉에 2007년이라 쓰인 사진 앨범. 핸드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로 더 많이 찍을 때라, 예전보다는 사진 수가 적었지만 나름대로 친구들, 가족들과의 추억을 인화해서 잘 모아두었다.

 

먼지가 묻은 앨범을 넘기며, 많은 옛 사진들은 뒷전이고, 그 중 원하는 딱 한 장의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괜찮아?’

‘…어?’

‘괜찮냐고.’

‘어…어. 카메라 테스트가 처음이라.’

 

 

인사도 하기 전에, 이름을 묻기도 전에(그러고 보니 이름은 당연히 안다는 듯, 서로의 이름을 물은 적이 없었다.), 손을 잡고 사진부터 찍었던 때. 아마 우리의 꼬인 순서는 그 때부터 시작이지 않았을까. 송이는 앨범의 거의 뒷부분에 끼워져 있던 두 사람의 사진, 첫 사진을 꺼냈다. 오디션에 합격하고 한참 후에 학원에 찾아갔던 날 선생님께서 뒤늦게나마 챙겨주신 사진이었다. 그 땐 이미 민준과 사이가 틀어진 이후라, 솔직하겐 받고 싶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져왔지만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선 앨범에 대충 끼워두고는, 단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앨범은 그 사진을 마지막으로 텅 비어 있었다.

 

 

“대박. 진짜 어색해.”

 

 

이제서야 제대로 보게 되는 우리의 첫 사진. 웃고는 있는데 서먹하고 억지스러운 게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분명 그 때는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뭐라고 평가를 할 수도 없을 만큼 표정이며, 자세며 다 엉망이었다. 나름 리드를 했던 민준은 송이보단 괜찮았지만, 지금과 비교해보면 조금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다. 송이는 그 사진과 오늘 민준이 보내온 사진을 나란히 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지, 절대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절대 이 사진을 꺼내볼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다시는 기다리지도, 꿈꾸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

 

 

Rrrr- 코 끝이 찡하고 가슴이 벅차는, 아직도 자신에게 어색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무렵, 방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방으로 돌아와 가방 속에서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꺼내든 순간, 이것은 꿈보다 더 아름다운 현실이라는 걸 깨닫는다. 도민준. 이름을 확인하고는 망설임 없는 손 끝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다.

 

 

= 여보세요?

“……”

= 자는 거 깨운 거 아니죠?

“…아니에요.”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느껴지는 조금 전의 감정들이,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일부러 방해하지 않으려 연락을 안 하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전화를 하게 되니 그간 정말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든다.

 

 

= 잘 지냈어요? 바빴죠?

“네, 뭐…조금. 그 쪽은 잘 쉬고 있어요?”

= 쉬기는요. 지금 며칠 째 운전만 몇 시간 하는지. 미국 왜 이렇게 넓대요?

“그러길래 내가 운전만으로 가기는 힘들 거다 그랬잖아요.”

= 그 때 선배 말 들었어야 했는데.

 

 

어차피 자기 뜻대로 했을 거면서 이제 와서 후회하는 척이다. 농담 섞인 투로 가볍게 말하는 민준 덕분에 멋쩍었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어디 갔다 왔냐, 재미있었냐, 이런 걸 물으니 민준은 지금 다 얘기해버리면 나중에 할 말이 없다고 안 해준다. 대신 약간 뜸을 들이더니 뭔가를 묻는다.

 

 

= …혹시 뭐 받은 거 없어요?

“…뭘 받아요?”

 

 

알지만 모른 척 했다. 평소처럼, 괜히 웃고 있는 표정을 들킬 리도 없으니.

 

 

= …아직 안 왔나…올 때가 됐는데.

“뭐가요?”

= 아, 아니에요.

“뭔데요, 뭐가 안 왔다는 건데요?”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요- 아닌 척 하지만 은근히 실망한 민준의 목소리에, 송이는 어린 애가 아주 작은 장난에도 좋아하는 것처럼 수화기 너머 민준에게 장난을 치며 웃었다. 손에는 민준이 보낸 둘의 사진을 보면서 천연덕스럽게.

 

 

“아까 뭐가 온 것 같기도 하고…”

= 진짜요?

“지금 다 말하면 재미없으니까 나중에 얘기해줄게요.”

= 하… 정말.

 

 

왜 장난 쳐요, 중간에 어떻게 된 줄 알고 놀랬네. 보낸 거 무사히 잘 왔어요. 근데 이거 나 오기 전에 보낸 거던데, 언제 그런 거에요? 하루 종일 나랑 있었는데 보낼 시간이 있었나…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다 하는 거죠, 뭐. 하여간 엄청 부지런해요.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갈 건지 말 안 해줄 거예요? 음, 플로리다 쪽으로 가려구요. 날씨도 춥고 운전하기도 힘들고 해서, 그냥 국내선 타고 가려고. 좋겠다. 서울은 아직 진짜 추워요. 따뜻하게 입고 다녀요. 거긴 나 없으니까. 그 쪽 없어도 나 챙겨주는 사람 많네요.

 

두 사람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별 것도 없는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정말 특별한 것도 없이… 평범하게,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대화 속에 언제나 존재하는 약간의 공백이 찾아왔을 무렵, 수화기 너머로 잡음이 섞인 한숨 소리가 전해져 왔다.

 

 

= …괜히 전화했다.

“왜요.”

= 그냥, 끊기 싫으니까…

 

 

송이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민준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슬며시 웃었다. 나도 그렇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문득, 계속 손에서 놓고 있지 않던 사진을 뒤집어 보았다. 거기엔 이번에도 그의 짧은 글이 쓰여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도 굳이 민준에게 말하진 않았다. 왠지 그가 민망해할 것 같아서.

 

송이는 이제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민준에게 말을 걸며 방에서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갔다. 깜깜한 하늘, 별도 잘 보이지 않는 서울의 밤에도 또렷하게 보이는, 달. 송이는 손을 뻗어 그 달 옆에 사진을 나란히 두고, 사진 뒷면에 쓰인 글을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멀리서 당신이 보고 있는 달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이 같으니,

우리는 한 동네지요’

 

 

 

 






#


 


D-5

 


 

새벽 같이 눈이 떠졌다. 송이는 일찍 일어난 김에 찬 바람을 쐰답시고 밖으로 나갔다. 나간 김에 우편함을 확인했다. 절대 일부러 새 편지가 와 있나 확인하러 나온 게 아니다. 우편함이 텅 빈 걸 보고, 이제 막 해가 뜨려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 우체부가 이렇게 일찍 일할 리가 없지- 다시 집으로 들어가 잠을 더 잤다. 잔 것 같지도 않게 내내 뒤척이다 2시간쯤 후에 일어나 또 우편함을 확인했다. 없었다. 언제 오는 거지. 우리 집에 먼저 오면 안 되나. 축 처진 어깨로 다시 돌아 들어갔다.

 

 

오늘은 오후에 영화 제작사와 미팅 스케줄 하나뿐이라 여유 있게 쉬다가 대충 준비를 하고 나섰다. 나가기 직전,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는 민준의 말이 생각나 겉옷을 얇은 코트에서 패딩 점퍼로 바꿔 입고 나갔다. 집 앞에 범이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범이는 여태 민준에게서 왔던 것과 같은 봉투를 들고 있었다. 송이는 놀라서 왜 맘대로 남의 우편물을 보냐고 얼른 뺏었지만, 범이는 이미 그 겉에 쓰인 이름을 보고 난 후였다.

 

 

“누나, 그게 뭐예요? 미국에서 온 것 같은데, 보낸 사람 이름이…?”

“뭐, 뭐.”

“분명 도민준이라 쓰여있었는데?”

“야, 윤범, 미쳤냐.”

“어디 다시 봐봐요, 맞는데?”

“뭘 봐. 내 꺼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범이에게 아니라고, 무슨 소리냐고, 딱 잡아떼고는 민준의 편지를 가방 속에 숨겼다. 오늘은 또 무슨 사진을 보냈을지, 어떤 말이 쓰여 있을지 엄청나게 궁금했지만 범이가 지켜보고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미심쩍은 투로 그럼 민준이 형은 어디 갔냐, 요새 안 보이는 것 같긴 하다, 라면서 은근슬쩍 민준에 대해 묻길래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고 모른 척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샌 안토니오 촬영에서 낙오되었을 때 두 사람을 발견했던 거나, 송이가 자꾸 민준의 대기실에 들락거리는 거나, 민준에게 전화가 온다든지 하는 걸 죄다 옆에서 지켜봐 놓고선 아직도 못 알아채는 게 더 신기하긴 하다. 같이 일한지가 몇 년 째인데 왜 그리 눈치가 없는지, 원. 사실 누군가에게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관계라는 걸, 혼자서 정의 내리기에도 애매하다. 우리 오늘부터 1일, 같은 유치한 말들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결국 세 번째 민준의 소식은 집으로 돌아와서야 꺼내볼 수 있었다. 솔직히, 아침부터 일어나 일하는 도중에까지 그걸 신경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조금은 싫었다.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지, 너무 생각하지 말아야지, 한 번 다짐한다.

 

오늘 봉투 속 두 장의 사진은 모두 누군가의 뒷모습이었다. 송이가 카메라를 들고 샌 안토니오 골목을 배경으로 찍은 민준의 뒷모습, 그리고 송이가 떠나던 날 출국 심사를 하러 들어가는 송이의 뒷모습. 그 사진을 보며 민준에게 전화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제껏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로 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그걸 방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송이는 오늘도 사진 뒤 편에도 쓰여진 그의 흐르는 듯한 글씨를 속으로 천천히 읽어본다.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누군가를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

 

 


D-4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누군가를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 그 말 때문인지 오히려 민준의 편지를 기다리던 초조한 마음이 사라졌다. 어제처럼, 언제 와 있으려나, 우편배달원이 우리 집에 좀 빨리 오면 안되나, 오늘은 뭘 보냈으려나, 오늘은 뭘 썼으려나… 같은 걱정과 기대를 하루 종일 머리 속을 담고 있게 되지도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일을 마치고, 친구도 만나고,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와 만난 그의 편지는 왠지 그 전보다 더 반가웠다. 집에 들어와 천천히 열어 본 네 번째 소식, 민준이 혼자 여행 하면서 찍은 사진이었다. 


샌 안토니오에서 헤어진 후 텍사스 주를 넘어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로 향한 민준은 때마침 그 곳에서 축제를 만났다. 수 많은 인파와 화려한 축제 분위기를 담은 사진 뒷면에 ‘뉴올리언스는 마디그라 축제 중. 지금 여기선 어딜 가도 사람들이 이걸 나눠 주네요.’ 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사진과 함께 봉투에 들어 있는 건 웬 목걸이였다. 마치 어렸을 때 뽑기로 뽑은 것처럼, 싸구려 플라스틱 재질의 알들로 엮은, 색깔도 아주 촌스럽게 새빨간 색의 목걸이였다.

 

 

“뭐야, 이걸 지금 나 하라고 준 거야?”

 

 

장난감 같은 그 목걸이를 보며 송이는 너무 촌스럽다고 웃었다. 금도 은도, 예쁜 것도 아니고. 송이는 이게 민준에게서 처음 받은 액세서리 선물이라 생각하니 더 웃겼다. 앞으로도 이런 웃음을 전해 받을 거라 생각하니, 그가 돌아올 날이 며칠 더 남았음에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쁘지 않다는 건 정말 나쁘지는 않다는 의미일 뿐이다. 내 말은, 반가운 편지와 이 편지를 보낸 사람 둘 중 선택하라면 당연히 후자라는 말이다.

 

 

그리고 송이는 그 날 오후, 초대된 어느 행사에 그 촌스럽고 장난감 같은 목걸이를 하고 나갔다. 그리고 그 날 찍힌 수 많은 사진들을 보고 네티즌들은 천송이가 한 목걸이가 어느 브랜드 꺼냐고 난리가 났다. 민준이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말할까, 궁금했다.

 

 

 


 






#


 


D-3

 

 

3일 남았다. 요 며칠 간은 시간이 앞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거꾸로 간다. 6일, 5일, 4일...3일. 



오늘은 스케줄이 없었다. 송이는 어제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지라 긴 시간 숙면을 취하고 일어났다. 좋아하는 향의 입욕제로 목욕을 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뭘 좀 먹으려고 냉장고를 여니 먹을 만한 게 거의 없었다. 있어도 유통기한이 다 지났다. 장 좀 봐야겠다는 생각에 간단하게 점퍼만 걸치고 지갑만 챙겨 나갈 채비를 했다. 걸어서 10분인 동네 작은 마트로 산책한다 생각하고 다녀왔다. 이것 저것 사다보니 돌아올 땐 장바구니가 한 손에 들고 오기 무거울 정도여서 차를 가지고 올걸 조금 후회하긴 했다. 



“어, 왔다.”



낑낑대며 집까지 약간 오르막길인 골목을 올라가는 도중에 저 위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편지가 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반가운 마음에 조금 빨리 걸었다. 민준이 돌아왔을 때도 그의 앞에서 이렇게 반가운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가워하는 연습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아닌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대문 앞에 도착했지만 우편함엔 아무 것도 없었다. 아까 우편배달원이 아니었나. 기대 안 한다고는 했는데 그래도 은연 중에 생각하고 있던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바닥에 내려놨던 짐을 다시 들고 들어가려다 다시 한 번 우편함을 들여다 보았다. 손을 집어 넣어 바닥도 더듬어 보고, 혹시 떨어졌나 주변까지 살폈다. 아직 아침이니까 이따가 오겠지, 뭐- 마지막으로 한 번, 아쉬운 눈으로 텅 빈 우편함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이 아침 골목이 고요하게 느껴진다. 나는 왜 이 자리에서 지금, 혼자임을 느끼는지. 





“이거 찾아요?”

“......?”





그리고 그 고요한 아침 골목을, 혼자임을 깨우는, 목소리. 






D-3

D-day
















멀리서 당신이 보고있는 달과 /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이 같으니 / 우리는 한 동네지요

권대웅, 아득한 한뼘 中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 누군가를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황경신, 생각이 나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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