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남자와 별인 여자

# 청춘기(靑春記) 8 본문

# 청춘기(靑春記) 8

SCIENCE AND LOVE 2016. 9. 28. 00:27




청춘기(靑春記)


- Youthology

# 8




[bgm] Jordan Klassen - On your collarbone





# JASPER, ALBERTA, CANADA




첫날 왔던 B&B 숙소에서는 마지막인 오늘까지 아예 쭉 머물기로 했다. 며칠 뒤 밴쿠버로 돌아가는 날에도 이 곳에 묵겠다고 주인 아주머니와 미리 약속도 했다. 아침도 든든히 챙겨먹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식빵에 여러 가지 맛 잼을 발라먹는 아침도 왠지 점점 괜찮게 느껴졌다.



“음…” 



그리고 송이는 지금 10분 째 현관문에 서서 거울을 보고 있다. 아무리 봐도 썩 마음에 드는 차림은 아니다. 모든 배낭 여행자가 그렇듯, 아무렇게나 입어도 상관없는 옷들만 챙겨왔던지라, 꾸미고 어쩌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활동하기 편한 반바지와 그나마 여행 오기 전 새로 산 깔끔하고 레터링이 마음에 드는 흰색 티셔츠. 그리고 엄마에게 빌려온 얇은 아웃도어 자켓, 여전히 지저분한 운동화. 뭔가 묘하게 매치되지 않고 평범하기만 한 차림은, 긴 머리를 빗어 정리한다고 해서 더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 이 아웃도어 자켓이 문제야. 해외 어딜 가도 등산복 입고 관광하는 사람은 다 한국 사람이래잖아? 엄마의 취향이라 더 촌스러워. 송이는 아웃도어 자켓을 벗어 돌돌 말아 크로스백에 넣었다. 차라리 이게 낫네. 저녁 때나 추우면 꺼내 입지 뭐. 송이는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밖으로 나섰다. 예뻐보이려는 것도 아닌데. 신경 쓸 이유도 없는데, 뭐 어때. 



“아- 오늘도 날씨 좋다.”



송이는 숙소를 나와 지난 이틀 동안 익숙해진 길을 따라 시내 중앙 쪽으로 걸었다. 민준과 약속한 시간까지는 아직 남아서 천천히 걸어갔다. 


어제는, 아네뜨 호수에서 만난 민준과 오늘 아침 재스퍼 다운타운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각자 다른 곳으로 갈 길을 갔다. 물론 같은 계획표대로, 같은 곳을 가는 걸로 되어 있었지만 민준이 순서를 바꾸어 가기로 했다. 나름 각자의 여행을 존중한 거랄까. 아무튼, 어쩔 수 없이 그 계획표에서 지울 수 밖에 없었던 말린 호수를 갈 수 있게 되다니, 기분이 좋았다. 도민준이 옆 자리에 함께 간다는 것도 나름, 나쁜 건 아니고, 뭐.



“커피를 살까…”



송이는 지나갈 때마다 늘 향긋한 커피 향을 풍기던 작은 카페를 보고 커피를 사갈까 했다. 나름 얻어 타고 가는 거니까 운전 기사님을 챙겨줘야지. 그런데 민준이 무슨 커피를 좋아하려나. 아니, 커피를 마시긴 하던가…? 송이는 주문을 하려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멀다면 멀고 멀지 않다면 멀지 않은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와 커피를 마셔본 기억이 없다. 그가 커피를 마시는 걸 본 적도 없다. 



“……”



결국 송이는 그냥 커피를 사가지 않기로 하고 길을 갔다. 나중에 다른 거 사지 뭐- 괜히 좋아하지도 않는 거 사는 것보단. 대신 점심이나 저녁을 사야겠다. 비싼 건 못 사주겠지만


두 블록 정도를 더 걸어 약속 장소인 재스퍼 관광안내소 앞에 도착했다. 아직 안 왔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민준을 발견했다. 먼저 와 있었네. 길가에 세워진 하얀색 차 트렁크 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보고 있는 민준에게 반갑게 다가갔다. 아직도 태평양 건너 북아메리카 대륙 한 가운데에서 그를 만난다는 건 조금 어색하지만.



“일찍 나왔네. 렌터카 회사 먼저 들르자며.”

“일찍 일어나서. 먼저 가서 차 가져왔어.”

“아아… 아침은, 먹었어?”

“응, 먹었지. 넌?”

“나도.”



짧고 뻔한 인사말을 나누고는 민준이 먼저 차에 타길 기다렸다. 보던 지도를 접은 민준은 송이에게 왜 안 타냐고 했지만 왠지 자기 차도 아닌데 먼저 홀랑 타버리기가 좀 그랬다. 송이는 민준이 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조수석 문을 열었다. 민준은 핸드폰 네비게이션 어플에 목적지를 검색하고는 핸드폰을 거치대에 고정했다. 저 캐나다 네비게이션 어플에 관한 것도, 송이의 완벽한(?) 계획 파일의 2번째 페이지에 있던 정보이다. 송이는 나름 유용하게 쓰겠네, 라고 생각하며 앉아있었다. 


안전벨트 해. 어, 어. 안전벨트. 이제 출발해도 되지? 응, 가자. 민준의 출발 신호에 잔뜩 기대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애 같은 그런 표정에 민준도 덩달아 슬쩍 웃는다. 



“가는데 얼마나 걸려?”

“한 1시간 정도?”



여기서 말린 호수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송이는 예전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봐서 다 알고 있었지만 괜히 한 번 물어보았다.



“운전은 많이 해봤어?”

“왜, 내가 사고 낼까봐?”

“아니이, 그런 게 아니고 그냥 물어보는 거야.”

“뭐… 아버지 차 가끔 몰고, 예전에 여행 가서도 많이 해봤어.”

“진짜? 난 완전 장롱 면허인데.”

“그런데 왜 여기서 렌트해서 다니려고 한 거야.”

“그야…”

“내가 알기론 그 형 면허 없는데.”

“…연습 해서 가려고 했지.”

“참 나.”



운전 얘길 꺼냈다가 괜히 또 제 발등을 찍었다. 운전도 못하면서 그저 같이 여행 갈 기대감에 대책 없이 ‘운전은 내가 다 할게!’ 하고 말했었지. 내가 생각해도 호구 같긴 했어. 뭐가 그리 아쉬워서 내가 다 하겠다고 숙이고 들어갔는지. 코웃음 치는 민준도 왠지 ‘천송이 호구’ 라는 것에 동의하는 표정이다.. 



“…그래도 최근에 연습 좀 해봤어. 이따 내가 운전할까?”

“됐어. 장롱 면허라는 소릴 들었는데 내가 어떻게 운전대를 맡기냐?”

“천천히 가면 되는데.”

“그냥 옆에 가만히나 있어.”



나름 얻어 타기 미안해서 한 소리인데 (물론 정말로 운전을 할 마음은 없었다. 무서워서.) 민준이 진지하게 거절한다. 송이는 가만히 있으라는 민준의 말에 알았다고는 대답했지만 한 귀로 흘리고는 창문을 열었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생각해도 호구 같고, 단순하다.


송이는 창문이 열린 도어트림 위에 팔을 기대어 고개를 약간 바깥쪽으로 내밀었다. 이렇게 편하게 드라이브 하니까 너무 좋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바람을 쐬고 있을 때 민준이 송이를 불렀다.



“천송이.”

“…왜?”



민준은 항상 성까지 붙여 이름을 부른다. 다른 남자 애들도 그러던가. 아무튼, 민준은 그렇게 부른다. 



“너무 애쓰려고 하지마.”

“……?”



바람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진 않았지만, 그가 무슨 얘길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관계에 있어, 모든 걸 너무 잘해보려했던 탓에 여기까지 왔다. 바쁘다는 걸 이해하고, 피곤하다는 그의 눈치를 보고, 뭐든 그래, 오케이, 내가 할게, 괜찮아, 기다릴게, 어쩔 수 없지 뭐… 어느새 을이 되어버린 연애의 갑질 같은 거- 말이다. 



“네가 그렇게 안 해도, 알아볼 사람은 다 알아봐.”

“…뭘 알아보는데.”

“……”



내가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나를 알아볼 사람은 알아본다는 거.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알아봤듯이.


송이는 알면서도 민준에게 되물었다.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시오.’ 라는 국어 영역 문제도 아니고- 목적어를 생략하곤 하는 민준의 화법은 예전부터 약간 답답했다. 사람이 참, 여전히 답답하네.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는 민준의 반응을 보며 송이는 예상했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창 밖 쪽으로 더 돌려 중얼거렸다.



“…지가 할 소린 아니지.”

“뭐라고?”

“아니야, 암 것도.”



빈정이 조금 상했다. 어울리지도 않는 조언을 하고는 모르는 척 운전만 하는 민준에 대한 이유 모를 섭섭함을, 돌아올 리 없는 바람에 그냥 실어보냈다. 



“......”



송이는 한동안 말없이 창 밖을 구경했다. 정말 바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걸까. 












#



재스퍼에서 말린 호수 방향으로 10분쯤 달리면 나오는 말린 협곡에 예정 없이 들렀다. 깊고 물살이 아주 센 협곡의 다리 위에서, 송이는 처음엔 무섭다고 난간 근처에도 가지 못하더니 나중엔 민준이 이만 가자고 할 때까지 거세게 몰아치는 계곡의 물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잠깐 말린 협곡을 구경하고 난 뒤, 재차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을 달렸다.



“나무가 다 새까매.”

“작년 이 맘 때쯤에 여기 큰 화재가 있었대.”

“진짜? 온통 다 타버렸네.”

‘이런덴 불이 나도 일부러 끄지 않고 자연적으로 다 탈 때까지 내버려둔다더라.”:

“아… 그렇구나.”



말린 호로 가는 길인 레인지 로드는 주변이 온통 불에 탄 나무들로 가득했다. 이걸 장관이라고 해야 할지, 묘한 감정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이 많은 숲이 다 타려면 얼마나 큰 불이었을까, 상상하면서.


주로 그렇게 풍경에 대한 이야기만 이따금 나누면서 딱 1시간을 채워 목적지에 도착했다. 


말린 호수의 첫 인상은 굉장히 크다는 거였다. 어제 갔었던 아네뜨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호수 반대편, 아주 멀리 마치 그림을 세워둔 것 같은 설산의 희미한 모습이 더 그렇게 느껴지게 했다. 



“음… 저 쪽으로 걸어갈까?”

“그래.”



송이는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가리키며 민준과 함께 걸었다. 호숫가를 따라 난 트래킹 길엔 진한 초록빛 나무들이 많았다. 다행히 여기까지 불에 탄 건 아닌가 보다. 음, 피치톤 많이 쐬고 가야지. 피치톤이 아니고 피톤치드. 참 나… 네 글자 중에 세 글자 맞았으면 대충 알아들을 것이지. 그거랑 그게 어떻게 같아- 산과 호수와 숲, 조용함과 평화로움 같은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 민준의 핀잔을 들으며 한동안 산책길을 걸었다.   


아름답고 놀라운 곳이긴 했지만, 사실 이렇게 걷는 거 말곤 딱히 무언가를 할 건 없다. 이 곳이 다 그렇다. 그래서 좋기도 하지만. 혼자라면 뭘 하든 상관없었지만, 송이는 여기서부터 어디까지, 언제까지 걸어야하나 살짝 고민했다. 날씨 좋다고 할까, 아까 그 말은 한 것 같다. 그럼 사진 찍어달라고 할까, 대화 거리를 생각하며 호수를 쳐다보기만 했다.



“……”



호수 한가운데에 작은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 저걸 뭐라고 하더라. 하나 혹은 둘씩 긴 보트에 균형을 맞추어 타 노를 저어가며 잔잔한 물 위를 유유자적 떠다니고 있는 모습. 송이는 드디어 할 일을 찾은 듯 했다.



“나 저거 탈래.”

“카약?”

“어어, 그거.”

“그래, 타.”



송이는 아까 주차를 하고 들어왔던 입구 쪽에 선착장이 있었던 걸 기억해내고 잽싸게 가던 길의 방향을 바꾸었다. 재밌겠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오른 걸음을 내디뎠지만, 민준은 그 자리에 그냥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뭐야, 안 와?”

“…나? 나도 타라고?”

“응, 이걸 어떻게 나 혼자 타.”

“1인용도 있잖아.”

“무섭단 말이야, 나 수영 못해.”

“하…”



당연한 거 아니냐며 뻔뻔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송이의 반응에, 민준은 살짝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결국 민준은, 내가 물에 빠지면 누가 구해주냐는 송이의 투정에 어쩔 수 없이 송이와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



“물에 안 빠지겠지?”

“네가 나대지만 않으면 돼.”

“직원한테 한 번만 더 물어봐. 안전한 거 맞냐고.”

“저기 봐, 어린 애도 탄다.”



정작 타자고 한 송이는 돈을 지불하고 인적사항을 써서 제출하는 내내 호들갑을 떨어댔다. 가방은 들고 타도 된다고 했지만 송이는 불안해서 안되겠다며 카운터에 맡겼다. 민준은 그럴 거면 왜 타자고 했냐며 못마땅하게 말했지만, 송이는 그래도 재밌을 것 같다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우리다!”



두 세 팀 정도 기다렸다가 둘의 차례가 오자 송이가 쏜살같이 먼저 선착장 쪽으로 뛰쳐나갔다. 준비된 보트 앞에서 민준에게 얼른 오라고 손짓을 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송이가 먼저 타려고 하자 민준이 송이를 불렀다.



“천송이, 잠시만.”

“…왜?”



민준이 송이의 앞에 성큼 다가와 서더니 송이의 구명 조끼 끈을 잡는다. 갑자기 허리를 감싸오는 손길에 놀라서,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절로 숨이 멈춰졌다. 



“구명 조끼나 제대로 입어.”

“......”

“그리고 아까 직원한테 물어봤는데 물에 빠지는 사람 거의 없대.”

“…알았어. 사실 별로 안 무서워.”



그러냐, 민준이 픽 웃으며 구명 조끼 양 쪽의 끈을 조여주었다. 마주 보고 선 거리가 꽤나 가깝다고 느꼈을 때, 민준이 줄을 너무 세게 잡아당겼다. 윽, 숨막혀. 그래? 조금 더 풀게. 됐어? 응, 이 정도면 됐어.


구명 조끼를 바로 입고 드디어 카약 보트 위에 올라탔다. 송이가 보트 안으로 발을 얹자마자 흔들린다며 난리, 또 난리다. 송이가 보트 앞머리에, 민준이 뒤에 탄 뒤, 직원이 간단히 노를 잡고 젓는 방법을 알려주는 걸 듣고는 출발했다. 각자 오른쪽, 왼쪽 나눠서 노를 젓기로 하고 말린 호수의 중앙으로 향했다. 



“어어어, 이거 뒤집힐 것 같애.”

“안 뒤집혀.”

“도민준 너 막 움직이는 거 아니지?”

“나 지금 노만 젓고 있거든?”



보트는 잘 가고 있었지만 송이는 불안했다. 할 일이 없기도 했고 타보고도 싶었지만, 괜히 탔나 하는 후회까지 했다. 아주 조금 익숙해지려고 하니, 유람선 하나가 호수를 가로지르며 출렁거리는 파도를 만들어낸다. 휘청거리는 보트에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노를 꽉 붙잡고 얼음. 민준이 뒤에서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파도랄 것도 없는 출렁임이 지나가고 가까스로 다시 앞으로 움직였다. 이왕 돈 주고 탔으니 저 멀리 머리에 눈을 뒤집어 쓴 산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러 가고 싶었다. 


배를 빌린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열심히 노를 저으며 앞으로 가고 있는 사이, 배 뒷머리에 앉아있던 민준이 송이를 불렀다. 노 젓는 데에 집중 하느라 민준이 세 번 정도 부른 다음에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그가 천송이- 이름을 부른 것도 아마 세 번.



“천송이.”

“어.”

“잠깐 멈춰봐.”

“…왜?”



이유를 듣기도 전에 노를 젓던 걸 멈추었다. 왜 불렀냐고 뒤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보트가 흔들리는 것 같아 움직이지 못하고 그냥 앞을 본 채로 대답했다. 



“이제 고개 좀 들어.” 

“……?”



이번에도 이유를 알기 전에 그의 말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더 설명해주지 않았는데도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송이의 시야에 그제서야 주변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이걸 보려고 보트를 탔던 거지. 송이는 어깨에 힘을 풀고 숨을 몰아 쉬었다. 후우-



호수 한가운데에서 보는 모습은 아까와는 또 달랐다. 제 자신이 더욱 더 자연의 작은 한 점처럼 느껴졌다. 물론 먼 곳의 설산은 이만큼 왔다고 해서 크게 가까워지진 않았다. 그래도 느낌만은 좀 더 크고 뚜렷해 보였다. 실컷 풍경에 대한 감탄을 한 후, 그 다음으로 송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물 위에 떠 있는 기분을 만끽했다. 햇살이 조금 뜨거웠지만, 선크림을 제대로 발랐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기분이 좋으니 됐다. 이제 어느 정도 두려움도 사라졌다. 이대로 물에 풍덩 빠져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혼자가 아니니까. 



“……”



송이는 다시 눈을 떠, 제법 익숙하고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잔잔한 호수 위, 작은 배 위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을 상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정말로 물에 빠질 것 같았다. 대신 다른 장면 하나를 꿈꾸었다.



“어어! 야, 갑자기 돌아보면 어떡하냐.”

 

 

송이는 용기를 내어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보트가 흔들리고 오히려 민준이 더 깜짝 놀란다. 자기도 무서웠구만 뭘. 송이는 놀란 민준을 보며 히히, 하고 장난스레 웃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앉아있던 자세를 바꿔 뒤로 돌아앉았다. 혼자가 아닌 둘이어서 상상할 수 있는 어느 장면 하나. 하늘과 산과 수평선과 물 위의 작은 보트와, 그 곳에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 그런 장면. 더 멀어질 수도 없다. 갈 곳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다. 그러면 균형이 깨어져 버리니까.



“뭐하는 거야.”

“그냥, 반대쪽 풍경도 보려구.”

“어차피 돌아가면서 볼 건데.”



송이가 아예 자신을 마주보고 앉자 민준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는 괜히 딴 곳을 본다. 



“……”

“……”



뭔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하다. 물 흐르는 소리도, 누군가가 노를 젓는 소리도, 사람들의 말 소리도, 바람에 풀잎이 스치는 소리도… 분명 굉장히 넓고 사방이 탁 트인 곳에 있는데, 아주 작은 공간에 온 몸이 담겨있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눈 앞에 보이는 모습은 현실 같지 않다.


이건 대체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직도 결정짓지 못했다. 반드시 결정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흐르지도 않은 물 위에서 시간을 흘려 보낸다. 



“무슨 생각해.”



송이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 계속 억지로 어긋나 있던 민준의 시선이 제게로 옮겨오는 게 느껴진다. 



“…너무 애쓰지 않으려는 생각.”

“……”



그렇지만 뱉은 말과는 달리, 시선이 마주친다. 눈을 둘 곳은 수도 없이 많은데, 하필 그 곳에. 애쓰고 싶지 않은 그의 눈동자에. 














저는 지금 바쁜 일 하나를 마치고 잠깐의 여유를 가지는 중

제본 입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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