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남자와 별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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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기(靑春記) 6

SCIENCE AND LOVE 2016. 9. 18. 21:04

 

청춘기(靑春記)

- Youthology

# 6

 

 

 





# JASPER, ALBERTA, CANADA

 


 

재스퍼에 처음 도착한 날,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한 30분 정도 동네를 돌아다니고 나서야 B&B, 그러니까 일종의 민박 같이 방 하나를 내어주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B&B를 하는 집 마당엔 오늘 손님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알려주는 팻말이 있다. VACANCY 라는 팻말이 보이면 주저 없이 문을 두드리면 된다. Hello, I am looking for a room, tonight.

 

관광객들도 오지 않는 조용한 마을 구석에 있는 1층짜리 작은 집. 4-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혼자 사시는 집은 아주 조용했다. 송이는 방을 쓰는 데에 나름의 규칙과 시설 사용 방법을 듣고 난 후 방으로 돌아와 바로 침대로 점프했다.

 

 

“너어무 좋다.”

 

 

근 이틀 간 가장 바란 순간. 이 부드러운 이불의 촉감이 그 얼마나 그리웠던지. 송이는 그 푹신푹신한 침대 속으로 급격히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지금 자면 시차 적응을 못하고 망친다. 적어도 해가 지고 난 후에 자야지- 송이는 일단 씻기로 하고 배낭을 열어 필요한 것들을 꺼내었다.

 

고등학생 때 팔을 다쳐 깁스를 해서 제대로 씻지도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며칠 만에 했던 샤워만큼이나 시원하고 기분 좋은 샤워였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피곤한 기운이 좀 사라져 밖으로 나가 다운타운을 좀 돌아보기로 했다. 기차에서 내려서도 보았던 풍경은 다시 보아도 아름다웠다. 송이는 구름 한 점 없이 유난히 파아란 하늘과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마을의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으며 걸었다. 집에 괜찮은 카메라가 있지만 안 그래도 많은 짐,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 마지막에 안 가지고 가기로 결정한 걸 후회했다. 어차피 많은 짐, 조그만 거 하나 추가되어봤자-인데.

 

다시 기차역 근처 상점들이 많은 곳으로 와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7시가 넘었는데 밖은 대낮처럼 환해서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못했었다. 송이는 사람이 많아 보이는 식당 하나를 골라 들어가 운 좋게도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엔 맛있는 게 많아 보였지만, 스테이크니 뭐니 하는 메뉴들은 가난한 배낭 여행객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송이는 제일 저렴한 축에 속하는 피시 앤 칩스와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먼 곳의 산맥을 보여 먹는 음식은, 그 흔하디 흔한 감자 튀김 하나도 정말 맛있었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던 순간의 행복감은 말로는 표현이 다 안 된다.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그 명당 자리에 조금 더 앉아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배도 부르고 기분도 알딸딸하고, 온통 처음 보는 풍경과 모르는 사람들뿐이니 좋지 아니할 수가 없다. 송이는 아까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가져온 재스퍼 지도를 펼쳐 들고 가보지 않은 곳 쪽으로 갔다. 사실 구경할 거리가 있거나 대단한 건 없었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괜찮았다.

 

 

길거리에 기념품 가게가 많길래 눈 앞에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기념품은 어느 곳을 가나 다 비슷하지만, 기념품에 새겨진 그 나라, 그 도시의 이름만으로도 특별함을 가진다. 이 곳은 국립공원이라 그런지 동물이 그려진 물건들이 많았다. 곰, 사슴같이 생긴 뿔이 큰 동물, 까마귀가 특히 많았다. 나도 여행하면서 곰 한 번 볼 수 있으려나- 실상은 그렇지 않지만 귀엽게 표현된 곰 캐릭터를 보며 슬쩍 기대를 한 번 해 본다.

 

 

“이런 걸 왜 사.”

“말 그대로 기념이잖아!”

“이거 뭐 쓸데도 없구만.”

 

 

기념품 가게 안에 한국어가 들려 저도 모르게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인 혹은 신혼부부쯤 되어 보이는 남녀가 기념품을 사니 마니 하면서 작게 투닥대고 있었다. 실용성도 없는 이런 걸 왜 사냐고 묻는 남자. 아마 도민준도 저럴 게 뻔하다.

 

 

“……”

 

 

이 상황에서 왜 그의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민준은 잘 들어갔으려나. 동네가 크지 않으니 여기 어디 근처에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돌아다니다 보면 마주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들을 해보며 바로 눈 앞에 있는 와펜을 만지작거렸다. 사슴과인 것 같은데 더 크고 뿔도 화려해 보이는 동물 모양의 와펜. 크게 비싼 것도 아닌 것 같고 배낭에 꽂고 다니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끼 정도를 해결할 수 있는 돈으로 쓸데없는 걸 사는 것 같기도 해서 조금 고민이었다. 아직 여행 초반인데다가 예산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결국 송이는 저 아옹다옹하는 커플에게 결정권을 맡기기로 했다.

 

 

“이거 하나만 사자.”

“…어휴. 그래. 사라, 사.”

 

 

결국 그 커플은 기념품을 하나 샀고, 송이는 자신도 기념품을 사기로 했다. 사슴 같은 동물 모양 와펜 하나와 약간의 고민 끝에 단풍 모양도 하나 더 집었다. 이 정도도 못 살 건 아니니까. 송이는 당당하게 계산대로 가 돈을 건네면서 직원에게 이게 무슨 동물이냐고 물었다. 직원이 ‘무스’라고 했다. 엠오오에스이, Moose. 송이는 고맙다고 말하고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늦었는데 아직도 밝다. 하루가 길어서 좋은 것 같다.

 

 

 







 

#

 


정말 피곤했던 탓인지 시차와 전혀 상관없이 잠을 아주 잘 잤다. 8시쯤 일어나 방을 나가니 주인 아주머니가 굿모닝, 인사를 하며 아침을 먹으라고 하셨다. 송이는 예상 못한 친절에 밝은 얼굴로 식탁에 앉았다. 구운 식빵과 계란 요리가 전부였지만, 이 곳은 캐나다였기에 특별했다. 아주머니가 어디서 왔냐, 혼자 왔냐, 학생이냐 등을 물어볼 때마다 어설프게나마 대답을 했다. 알아 듣고 짧은 대답을 하는 건 가능했지만, 뭔가 유창한 문장으로 먼저 질문을 하거나 이 곳에 대한 감상을 말하는 건 좀 힘들었다. 재스퍼 뷰리풀! 이런 정도로만 표현할 수 없음이 스스로가 안타까웠다.

 

송이는 그리 크지 않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주인 아주머니도 물론이고, 어제부터 낯선이를 경계하면서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얼룩 무늬 고양이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하루 더 이 곳에 묵기로 결정했다. 송이는 아침을 먹고 씻고, 또 잠이 오는 것 같아 1시간 정도 더 잤다. 그리고 거의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 숙소를 나섰다. 배낭에서 오늘 필요한 것들만 간단하게 챙겨 나와 자전거를 빌리러 갔다. 차가 있으면 편하겠지만 그런 건 애초에 포기했다. 사실 운전 면허증만 있다 뿐이지, 운전도 잘 못한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도 꽤나 좋은 여행일 것 같았다. 여기엔 히치하이킹이 흔하다던데, 그런 것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고.

 

송이는 오늘도 그저 파랗기만 한 하늘에 감사하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바람마저도 좋다.

 

 

 

 




 


 

# ANNETTE LAKE, JASPER



 

자전거를 빌려 향한 곳은 재스퍼 다운타운 근처의 아네뜨(Annette) 호수라는 곳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꽤 왔는데, 이동하는 것도 여행이라 치니 먼 것 같지도 않았다. 입구에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더 들어가니 눈 앞에 드러나는 탁 트인 풍경.

  

 “와…”

 

 

 

송이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천천히 호숫가로 걸어갔다. 꽤 넓게 펼쳐진 잔디에는 아주 큰 개 2마리가 뛰어놀고 있었다. 그 개들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한 켠에선 가족들이 캐치볼을 하고 있었고, 보트를 타려고 준비 중인 사람들도 있었다. 직접 보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끌리는 곳 아무데나 가서 물 위에 이 경치를 직접 감상하며 떠다니는 거, 정말 멋지다. 특이하게도 이 호수는 한 쪽이 마치 해변가처럼 고운 모래 사장이 작게 형성되어 있었다. 정말 바다인 것처럼 수영복을 입고 누워 있는 사람도 있었다. 

 

호수를 한바퀴 빙 둘러볼까, 하고 안내판을 보았는데 걸어서 가기엔 엄청 긴 거리였다. 걷는 건 앞으로도 많이 할 것 같아서 패스. 송이는 그냥 벤치에 앉아 쉬기로 결정했다. 잔디, 호수, 멀리 키 큰 나무들의 숲, 더 먼 곳엔 머리만 하얀 산들을 보며 한가한 쪽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조용하고 정적인 공기를 마시며 앉아있다가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산 샐러드 팩과 체리를 꺼냈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거의 먹어본 적이 없는 체리가 저렴한 편이라 냉큼 사왔었다. 송이는 여기서는 당연히 그래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체리를 씻으러 호숫가로 갔다. 호숫가에 쪼그려 앉아 깨끗한 물로 체리를 대충 씻어 다시 벤치로 돌아와 자신만의 간단한 점심상을 준비했다. 아네뜨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체리 하나를 입에 넣었다. 음- 대박. 완전 맛있어. 맛있어. 적당히 달콤한 체리의 맛에 엄청 달콤한 행복이 느껴진다.

  

 

“뭘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어.” 

“……??” 

 

 

맛있다며 혼자 호들갑스럽게 감탄사를 날리고 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맞은 편에 나타났다. 예상은 못했지만, 혹시나는 했다. 

 

 

“…뭐냐.” 

“여기도 사람들 가는데 다 똑같네.” 

 

 

송이는 체리를 입에 가득 문 채로 민준을 보았다. 민준은 맞은 편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친 인사도 없이. 

 

하루만에 다시 만난 거라 그런지 아주 크게 당황스럽진 않았다. 다만 언젠가는 마주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 시점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을 뿐. 송이는 민준에게 어떻게 왔냐 물었고, 민준은 턱 끝으로 뒤 쪽 공터를 가리켰다. 뒤를 돌아보니 송이의 자전거 옆에 다른 자전거 한 대가 더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야.” 

 

 

두 대의 자전거를 보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민준이 체리 하나를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이거 12달러 짜리지만 며칠동안 아껴 먹으려고 산 건데. 잠깐 욱해서 소리를 지르니 민준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는 씨를 뱉는다. 치사하게. 송이는 그래, 먹을 걸론 치사하지 말자 싶어서 농담, 하고 웃고는 체리 하나를 집어 민준에게 건넸다.

  

 

“숙소는 잘 구했어?” 

“응, 꽤 좋는 B&B. 집도 깨끗하고 주인도 친절하고.” 

“잘됐네.” 

“호스텔은 괜찮아?” 

“4인실인데 괜찮았어.” 

“다행이 코 고는 사람 없었나 보네.” 

“어.” 

 

 

3명의 룸메이트 모두 코를 골지 않을 12.5%의 확률에 대해 이야기 하니 민준이 픽 웃으며 대답한다. 너는 그 때 코 고는 4학년 룸메이트 형의 욕을 1년 내내 해댔었지.

  

 

“…원래 오늘 여기 오려고 했었어?” 

“왜, 내가 너 따라왔을까봐?” 

“아니, 무슨.” 

 

 

블로그나 여행 책자에 흔히 쓰인 코스도 아니고, 송이는 민준도 재스퍼에서 제일 먼저 이 곳을 택한 것이 조금 신기해 물었다. 민준은 또 슬쩍 웃으며 가방에서 뭔가 주섬 주섬 꺼내었다. 두 번 접힌 종이 한 장. 거기엔 민준의 여행 스케줄이 날짜 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야, 이건.” 

 

 

아니, 송이 자신의 여행 스케줄이라고 해야하나. 

 

 

“아…” 

 

 

스케줄 표를 보고 놀라는 송이를 보고 민준도 뭔가 생각난 듯 놀란다. 그리고 또 한 번 중얼거린다. 아, 윤종열, 진짜. 민준은 종열에게서 여행 루트까지도 받아왔던 것이었다.

  

 

“이거 그 인간이 자기가 짠 거래?” 

“인터넷에 있는 건데 자기가 좀 바꾼 거라 그러던데.” 

“나를 아예 없는 취급하시구만.” 

“아… 이걸 깜빡하고 있었네.” 

 

 

내가 그걸 얼마나 많이 고생해서 만든 건데. 인터넷 다 뒤지고 책도 보고 지도에서 거리 재어가면서 최대 효율, 최소 비용으로 정한 건데! 처음에 스케줄을 보여줬을 땐 보는둥 마는둥 너무 빡센 거 아냐? 라고 하더니. 그거까지 도민준에게 팔아 넘기다니! 

 

 

“넌 그렇다고 그걸 또 남이 짜준대로 오냐?” 

“야, 나도 급하게 온 거고, 그거 보니까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서 그거대로 그냥 온 것뿐이야!” 

“…내가 한 달 동안 고심해서 짠 거니 당연하지.” 

 

 

그 일은 이제는 잊어버리려 했는데 아직도 속이 쓰릴 일이 남았다니. 송이는 괜히 또 민준을 원망해보지만 어쨌거나 이미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또 자전거를 타고 아네뜨 호수 앞 벤치에 앉아있는 두 사람이다.

 

송이는 자신이 직접 파일로 작성했던 여행 스케줄 표와 거의 같은 민준의 스케줄을 보며 이대로 같이 다니게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민준을 보았다. 송이의 말에 약간 버럭했던 민준은 별 생각이 없는 듯 호수 쪽으로 시선을 돌리곤 체리를 먹고 있었다. 바꾸라고 할까, 아니 뭐 계획이 똑같다고 무조건 그대로 하는 건 아니니까 안 만날 수도 있지. 만난다 하더라도 이 넓은 곳에서 그냥 따로 다니면 되는 거고. 가끔 가다 만나면 덜 심심할 수도 있고…

 

  

“……”

  

 

그래도 혼자 오기로 한 여행인데 괜히 귀찮을 지도 몰라. 괜히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생길 지도 몰라. 괜히 트러블만 생겨서 곤란할 지도 모르지.

 

 그리고 또 괜히 마음이…

  

 

“……?” 

 

 

송이가 민준의 동의도 없이 혼자 계획 변경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동안,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풍겨져 왔다. 연기가 나는 쪽을 보니 어느 한 가족이 바비큐를 하고 있었다. 송이는 좀 전의 생각은 싸그리 잊고 부러운 눈으로 그 가족들을, 아니 정확히는 맛있게 익어가는 그릴 위 고기를 보았다.

  

 

“아… 부럽다.” 

“그러게.” 

 

 

민준도 송이를 따라 단란한 가족에게로 시선을 빼앗긴다. 잠시동안 두 사람은 그렇게 멍하니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아직 여행 3일차이지만 먹은 것들이 영 부실했으니 부러울 수 밖에.

  

송이는 침만 더 고일 것 같아 그만 쳐다보고 마트에서 싸게 사 온 샐러드나 먹기로 했다. 하지만 민준의 앞에 벌써 잔뜩 쌓인 체리씨를 보고 그를 째려보았다.

  

 

“그만 먹어.” 

“체리 하나 가지고 되게 뭐라 하네. 알았어, 하나 사줄게.” 

“이거 내 며칠치 식량이란 말이야.” 

“나 같으면 저런 거 안 사고 더 좋은 걸 먹겠다.” 

 

 

치사하다고 이미 집은 체리를 도로 내려놓은 민준은 송이의 크로스백에 꽂혀 있는 와펜 기념품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거 뭐 쓸데도 없는 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들어간 민준의 반응에 송이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었다. 역시나 저럴 줄 알았다니까. 예상할 만큼 그대로인 모습이 반갑다. 뜬금없이 송이가 웃자 민준이 황당한 얼굴로 쳐다본다. 왜 웃어. 왜 웃냐니까. 아아, 그냥, 아무 것도 아니야. 천송이 너 이상해. 

 

민준이 저를 계속 의심스럽게 보자 송이는 억지로 웃음을 참고는 대신 민준의 목에 걸린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도민준.” 

“왜.” 

“나 네 카메라로 사진 좀 찍어줘.” 

“네 걸로 찍어.” 

“난 핸드폰 밖에 없단 말이야. 찍어주라, 응?”

  

 

송이가 부탁하자 민준은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송이는 잘 됐다며 벤치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여러 가지 주문을 해댔다. 호수가 잘 나오게 찍어달라, 역광 아니냐, 너무 클로즈업 하지 마라, 깐깐하게 구니 민준이 자기가 알아서 찍겠다고 했다. 

 

송이는 내친김에 자리를 옮겨 다른 데에서도 찍어달라고 했다. 먼저 호숫가 쪽으로 가버리는 송이를, 민준이 마지못해 따라간다. 송이는 호수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민준은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댄 채로, 반짝이는 거 말곤 너무나도 잔잔한 호수를 좀 더 가까이 담으려, 조금씩 가까이 다가온다. 

 

셔터를 몇 번 눌러보더니 민준이 카메라 버튼 몇 개를 만지작거린다. 뭐가 잘못 됐나. 뭐해, 송이가 허공에 떠 있는 2개의 손가락이 민망해 빨리 찍어달라고 재촉한다.

  

 

“…천송이.” 

“응.” 

“너도 내일 말린 호수 갈 거야?” 

“……?” 

“원래 거기 가기로 했을 거 아냐.” 

 

 

카메라를 만지고 있던 민준이 갑자기 스케줄 표의 내일에 대해 물어왔다. 아까 채 정리하지 못한 생각이었는데 민준이 먼저 물었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 거긴 차 없이 가긴 멀어서.”

  

 

송이는 약간은 머뭇거리다 마주친 그의 눈빛에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생겼다. 기대라는 게 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그럼 같이 가.” 

“……” 

“내 생각엔, 네가 탔어야 할 차도 내가 빌린 거 같거든.” 

“……” 

“그러니까 같이 가.”

 

 

 

그래도 혼자 오기로 한 여행인데 괜히 귀찮을 지도 몰라. 괜히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생길 지도 몰라. 괜히 트러블만 생겨서 곤란할 지도 모르지. 

 

그리고 또 괜히 마음이… 마음이 어려워질 지도 몰라. 그 때처럼.

 

 

 

“……”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그래. 그러지 뭐.”

 

 

 

후회할 지도 몰라, 그 때처럼.

 

 

 

“…사진이나 빨리 찍어줘.” 

“오케이.”

  

 

송이가 긍정의 대답을 하자 민준이 그제야 웃는다. 안 어울리게 왜 그렇게 웃고 그러냐- 송이는 약간 민망해서 사진이나 다시 찍어달라 손짓했다. 민준이 다시 눈으로 뷰파인더를 가져가고, 찰칵. 야, 이제 내가 너 찍어줄게. 난 됐어. 뭘 됐어, 찍어줄게, 이리 와서 서 봐.

 

송이는 민준과 자리를 바꾸고는 먼저 찍은 제 사진을 확인했다. 오, 제법 좀 찍었는데- 송이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민준의 모습을 프레임 안에 담았다. 디스플레이 속 어색하게 서 있는 민준이 왠지 재밌었다. 송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웃고 있으니 민준이 멀찍이서 왜 또 웃냐고 인상을 찌푸린다. 아니, 잘 나와서- 송이는 좋게 대답을 해주고 방금 찍은 모습 그대로를 눈에도 담았다. 재스퍼의 하늘과, 로키의 산과, 아네뜨의 호수와, 도민준.

 

 

“……” 

“……” 

 

 

그 땐 정말 몰랐던 것이었는지, 모른 척 한 건지, 아니면 망설였건 건지… 지금에 와서 따져 묻기엔 아무 소용이 없어져버렸다. 그저 분명한 건, 우리는 이 곳에서 또 한 번의 감정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될 거라는 것이다. 또 모른 척 하고 또 망설이고… 그렇게 또 후회하고 또 오랫동안 잊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 때처럼.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습니까아?



* 9/21 내용 중 용어 수정 : 모레인 호수 → 말린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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