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남자와 별인 여자
# 청춘기(靑春記) 4 본문
청춘기(靑春記)
-Youthlogue
# 4
# VANCOUVER TO JASPER VIA RAIL
“......!”
잠들었었다는 걸, 눈을 뜨고 나서야 깨달았다.
비행 시간 내내 제대로 못 잔 데다가 한창 한국은 새벽일 시간이라 엄청 피곤하긴 했었다. 그래도 옆에 앉은 이에 대한 의식은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잠이 들었던 건지. 송이는 정신이 비몽사몽 한 채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가 옆 자리가 비어있는 걸 발견했다. 어디 갔지, 화장실 갔나.
얼마나 잔 거지. 밖은 많이 어두워져 있었지만 완전히 캄캄한 건 아니었다. 이 쪽은 해가 늦게 진다더니… 몇 시쯤 됐으려나. 8시? 9시? 그나저나 나 입 벌리고 추하게 잔 거 아닌가- 조금 걱정을 했다. 그렇게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 가운데에서도 잘도 잤다. 왠지 이렇게 자연스러워도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낯설지가 않다. 여전하다고, 너를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나를 또 그렇게 느꼈을까.
“흐아암.”
좌석이 일반 기차보단 훨씬 편하고 앞뒤 간격도 넓었지만 역시나 아주 편안한 건 아니었다. 폭신한 침대에 눕고 싶어졌다. 하지만 침대칸은 너무 비싼 걸- 그냥 계속 자야지. 쪽팔리니까 도민준 오기 전에 그냥 자버리자. 송이는 최대한 잠을 잘 잘 수 있는 자세를 찾아 시트에 몸을 뉘었다.
“……?”
그래도 영 불편한 것 같아 뒤척이고 있을 때, 좌석 앞 눈높이 즈음에 무슨 종이 한 장이 꽂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뭐지, 다른 좌석에도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송이는 몸을 일으켜 손을 뻗어 작은 종이 조각을 손에 쥐었다.
‘일어나면 2층으로 와’
기차 승무원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게 아니라면 이걸 썼을 사람을 한 명뿐이다. 2층엔 왜? 이 기차에 2층이 있긴 해? 고개를 갸웃 했다. 지금 너무 잠을 자고 싶은데 귀찮게 왜 오라가라야, 눈살을 찌푸리며 한 번 더 민준의 글씨를 쳐다보았다.
잘 쓰는 것도, 못 쓰는 것도 아닌 그냥 그저 그런 남자 글씨. 송이는 잠시 그 잉크 자국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객실 칸을 나서 화장실에 잠깐 들러 거울을 보았다. 다클서클 좀 봐- 거울을 본다고 꼴이 더 나아질 리는 없겠지만.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 갔다.
Observation Sky Dome. 계단 위를 올라가며 본 안내판에 한 번 더 의문을 가졌다. 뭐 하는 곳이지? 여기로 오라는 게 맞나? 하지만 2층에 다다라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든 기분은, 적어도 지난 24시간 중에선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말 그대로 돔 형태로 생긴 공간은 옆부터 천장까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다. 탁 트인 곳에 비추는 오늘의 마지막 햇빛. 송이는 우와- 작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 곳을 한 번 쭉 둘러보았다. 끝으로 눈길이 닿은 정면엔, 기차가 쉬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는 레일이 보였다. 소실점이 보일 정도로 아주 길게 뻗은.
“천송이.”
한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에 팔린 관심을 중간에서 가로챈 건, 민준의 목소리였다. 누가 봐도 제일 탐나는 제일 앞자리에서 손을 들고는. 뭐야. 이거 보러 오라는 거였나. 송이는 잠시 저도 모르게 지었던 미소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민준이 있는 곳으로 갔다. 민준은 송이가 오자 안 쪽으로 옮겨 앉으며 자신이 앉아있던 복도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래도 어두워지기 전에 일어났네. 내릴 때까지 잘 기세더니.”
“비행기에서 잠을 좀 못 자서 그래.”
이런 광경만 아니었다면 다시 내려가서 잤을 거야. 송이는 아무래도 좀 전에 입을 벌리고 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삐죽였다.
“나 여기에 이런 데가 있는지 몰랐어.”
“정말?”
“얼핏 본 것 같긴 한데, 비싼 클래스만 갈 수 있는 줄 알았지.”
“우리가 무슨 꼬리칸 사람들이야?”
송이는 아까 자신이 생각했었던 걸 직접 입 밖으로 꺼낸 민준을 힐끔 돌아보았다. 하지만, 너도 그 영화 봤구나, 나도 그 생각했었는데- 라는 공감 같은 건 굳이 꺼내지 않았다.
“Hey,”
이런 꼬리칸이면 꽤 괜찮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웬 머리가 노란 외국인 한 명이 두 사람의 복도 옆 빈 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어왔다.
“Your girlfriend finally came.”
“......?”
알아듣기 그리 어려운 문장은 아니었으나, 송이는 어느 단어 하나에 꽂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준을 쳐다보았다. 민준은 이미 그 외국인과 안면을 튼 사이인 건지 yes, 하고 웃으며 눈인사를 주고 받는다. 송이가 여전히 그 단어가 저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구기자, 민준이 뒤늦게 의중을 파악하고 픽 웃는다.
“야… 난 Girlfriend 라고 한 적 없다? 이 자리에 My friend가 곧 올 거라고만 말했지.”
“참 나…”
“이 자리 맡아놓으려고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데.”
누가 맡아달랬나- 구시렁구시렁. 뭐라고 더 하고 싶었지만 민준이 크게 대꾸해주지 않을 걸 안다. 그리고 티격태격 하기엔 아직도 어색할 만큼, 재회의 시간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송이는 눈 앞에 펼쳐진 파노라마 같은 풍경으로 도로 눈을 돌렸다.
“아무튼, 계속 잤으면 억울할 뻔 했네.”
송이는 고맙다는 말을, 계속 잤더라면 억울했을 거란 말로 대신 했다. 혼잣말도, 민준에게 하는 말도 아닌 애매한 크기의 목소리로. 그래서 그가 알아들었을 지는 모르겠다.
끝없이 늘어서있는 키 큰 나무들의 수많은 가지와 잎들이, 그 사이를 갈라놓으며 달리는 기차를 아슬하게 스쳐간다. 지평선 위의 눈 덮인 산은, 얼마나 멀리 있는 건지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지지 않고 희미하게만 보인다. 하늘은 몹시도 파랗기도 하고 붉기도 했다. 그 사이를 그라데이션처럼 채우고 있는 색깔은 콕 찝어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한국의 하늘도 이랬던가. 기억이 잘 안 난다. 기분 탓일 지도 모른다. 마치 바람이 유리창을 뚫고 불어오는 것 같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탄 느낌 같다고 해두자. 이건 억지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도, 스스로 세뇌시키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나쁘지 않다.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
“원래 여기로 여행 오려고 했었어?”
굳이 말이 없을 필요가 있을 땐 어색함도 없다. 아주 느리게 지는 태양. 하늘의 푸른색은 붉은색이 되고 붉은색은 어두운 빛이 되어갈 무렵, 송이는 그 일몰 광경에 눈을 고정한 채 민준에게 물었다.
“아니. 그냥 어디론가 가고 싶단 생각만 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종열 선배가, 자기가 가려다 취소한 여행이 있는데 어떠냐고 얘길 들었고.”
“남이 가란다고 가냐, 그걸. 너답지 않게.”
“나도 알아볼 만큼 알아봤지.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라 생각했고.”
맞아, 나도 그래서 가자고 졸라댔었지.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었던. 그러나 괜히 그 말도 할 필욘 없었다. 다 지나간 애틋했던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싫었다. 민준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송이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그럼 넌… 왜 혼자 오게 됐는데?”
“…그냥, 아까워서.”
“뭐가?”
“이 기차 티켓도 아까웠고, 여기 갈 거라 생각했던 기대감도 아까웠고.”
민준도 똑같이 고개를 끄덕, 그 마음에 공감을 표하는가 싶더니, 다시 한 번 운을 띄운다.
“혹시 너…”
“…아니거든?”
그러자, 뒷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혹시’라는 단어 하나에 송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꼬리를 잘라버린다. 민준은 한 순간에 얼굴이 시뻘개진 송이를 보며 황당한 듯이 픽 웃어버린다.
“뭐가 아닌데.”
대체 혼자 무엇에 뜨끔했는지. 송이는 너무 과민 반응한 제 자신이 민망했지만, 목소리를 낮추고 나름의 변명을 이어갔다.
“…뭐, 그 인간을 못 잊었다거나 그런 거, 아니라고.”
“……”
“그 사람이랑 상관없이, 이건 그냥 나의 여행일 뿐이야.”
“……”
송이가 그 빨간 얼굴을 한 채로 주절 주절, 이번 여행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하는 동안 민준은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아, 내가 너무 오버했나, 싶었다. 강한 부정은 사실 강한 긍정이라고, 오히려 내 말을 오해할 지도 몰라. 진짜 정말 맹세코 아닌데- 송이는 참 빨리도 찾아오는 후회를 숨기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누가 뭐래?”
그 특유의, 약간의 웃음기를 담은, 목소리가 전해졌다. 그 때가 되어서야 송이는 민준을 돌아보았다. 좌석에 머리를 기댄 채, 민준은 이미 송이를 보고 있었다. 평행했던 시선은, 그것이 틀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
“……”
작게 미소 짓고 있는 민준을 보던 송이는 문득, 널 참 오랜만에 본다, 라는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안녕, 오랜만이네. 황당한 우연에 가려진 긴 시간만의 인사는, 이제 와서 하기엔 타이밍을 놓친 지 오래다. 우린 대체, 언제쯤 진짜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이제 깜깜해져서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내려 가자.”
“응, 그래.”
의식할 수 있을 만큼의 정적은, 민준에 의해 깨어졌다. 밖은 이제 거의 컴컴해졌고, 기차의 밝은 불빛이 철길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송이는 먼저 Sky dome 밖으로 나가 계단을 내려가는 민준을 뒤따라 갔다. 앞서 가던 민준이 물었다.
“배 안 고파?”
“조금?”
“아까 나 초밥 사온 거 있는데.”
“나도.”
사실 나 아까 그 스시 가게에서 너 봤어.
“그래? 그럼 같이 먹으면 되겠네.”
“그런데 나 졸려.”
“먹고 자.”
“그럴까.”
“그래.”
그 때 인사를 했더라면 조금이나마 덜 어색했으려나.
“......”
왠지 모르게 어딘가 마음이 걸린다. 무언가를 잊은 것 같은. 언제나 너는 그런 느낌.
#
직장 다니기 시작하면 이렇게 길게 여행 가지도 못하겠네. 응, 그래서 더 오려고 했고. 근데 나 취업한 건 어떻게 알았어? 뭐… 주변에서 하는 말 들었지. 나도 듣는 귀는 있어. 귀만 있고 입은 없나… 뭐라고? 말을 좀 알아듣게 해. 아냐, 됐어. 뭐래. 아무튼 부럽네. 넌 공부도 잘하니까 더 좋은데 취직할 거 아냐. 너 저번 학기에도 3등인가 했다며? 3등 아니고 2등. 어. 그래, 너 잘났다.
휴학하고 1년 동안 뭐 했어? 그냥 여행 다니고, 공부도 좀 하고. 휴학이 공부를 쉰다는 말 아냐? 참 대단해. 여행은 어디 어디 갔었어? 유럽을 한 달 정도 다녀왔고,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도 갔었고. 와, 진짜? 좋겠다. 나 정말 유럽 가 보고 싶은데. 그럼 이번에 왜 유럽 안 가고? 그야, 윤종열 그 인간이 지는 유럽 갔다 왔다고 해서. 아. 유럽보다 여기가 더 좋겠지? 응, 유럽 생각보다 별로야. 그건 갔다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잖아.
기억나는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별 다른 얘기 없이 그냥 최근 서로의 근황 정도만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대화를 하면서도 송이가 연신 하품을 해대니 민준이 이제 그냥 좀 자라고 하며 손 끝으로 이마를 밀어내 의자에 눕게 했던 건 기억 나는데, 언제 그렇게 잠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꿈 속에서 민준에게 무언가를 더 물어봤던 것 같다. 아마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말이었던 것 같다.
‘도민준.’
‘어.’
‘그런데 왜 3년이 넘도록… 한 번도 연락 안 했어?’
그러자 그가 무섭도록 아무 감정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왜?’
‘……’
그러게, 네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어렴풋한 그 한 컷의 잔상은, 꿈이어서 다행이었다.
짧은 대화와 짧은 꿈의 기억과는 달리, 제법 오랫동안 깊게 잤다. 불편한 와중에도 나름 잠을 잘 자고 눈을 떴을 땐, 기차 안은 이미 밝아져 있었다. 넓은 창은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지만 그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에 눈살을 찌푸린 채로 눈을 떴다.
“아, 어깨야.”
고급 호텔의 푹신한 침대를 상상하며 몸을 일으켰다. 덮고 있던 담요가 툭 바닥에 떨어졌다. 담요를 주우며 이게 어디서 났지, 하고 잠시 의문을 가졌다. 새벽의 기차는 조금 추웠었지. 송이는 옆에서 등을 보인 채 좌석에 기대 누워 있는 민준을 보았다. 바로 옆 자리에서 민준이 자고 있다는 것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넓은 객차 안에 그저 두 자리일 뿐인데. 수 십 명의 사람들 중 그저 두 명일 뿐인데.
“......”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이 이상하다. 하필 이 때, 하필 이 곳에서 만난, 하필 도민준이, 등을 맞대고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이.
#
민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고, 아직도 기차 도착 시간까지는 5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계속 피곤하고 시차 적응이 안 되는 느낌이었다. 민준과 송이는 함께 기차 안에서 파는 샌드위치 같은 걸로 대충 애매한 끼니를 해결하고, 각자 할 일로 남은 시간을 보냈다. 송이는 책을 읽었고 민준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송이가 얼핏 훔쳐보니 그가 하고 있는 게임은 스도쿠였다. 꼭 지 같은 것만 해요.
멍한 머리 속 때문에 책의 활자들은 눈에 잘 안 들어왔고, 그러다 중간에 또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민준이 그러면 시차 적응 못한다고 억지로 깨웠다. 그러면서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커피를 마시고, 창 밖을 구경하고, 책의 읽었던 부분을 읽고 또 읽고, 그러다보니 기차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드디어, 재스퍼.
# ALBERTA, JASPER STATION
“영원히 도착 안 할 것 같더니, 결국 왔네.”
“그러게.”
20여 시간 만에 내린 땅. 재스퍼는 밴쿠버보다 기온이 살짝 낮았다. 거의 이틀에 걸쳐 도착한 이 곳은, 먼 거리만큼이나 낯설고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멀리 산맥들에 둘러싸여 있는 마을은, 이렇게 혼자여서인지 정말 조용했다. 여름 성수기 시즌이라 관광객들은 많아보였지만, 파란 하늘과 거대한 산들에 비하면 그냥 작은 존재였다. 송이는 크게 들이마신 서늘하고 맑은 공기를 내뱉기가 아쉬웠다.
“조용하고 너무 좋다, 그지?”
“응.”
송이가 마을을 한 번 둘러보며 묻자, 민준도 그 말에 동의한다. 자, 이제 그 다음은.
“……”
“……”
어차피 열심히 세웠던 계획은 진작에 모두 틀어져버렸기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불쑥 나타날 거라는 건, 오차 범위에도 없던 일이었다. 물론, 그냥 기차 옆 자리의 인연 쯤으로만 여기면 되겠지만…
“천송이 넌 숙소 어디야?”
“나? 이제 구해야지. 숙소 예약 하나도 안 하고 왔어.”
“대단한 배짱이시네. 성수기라 없으면 어쩌려고.”
“나 하나 잘 데 없겠어? 민박 구해보고, 없으면 캠핑장 가도 되구. 너는?”
“난 여기 근처에 호스텔.”
“아, 그래.”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하나 둘 역을 통해 밖으로 나가고 있었지만, 민준과 송이는 플랫폼에 그대로 서 있었다. 가야 하나, 가야지. 뭐라고 해야 하나. 송이는 괜히 눈을 하늘에 두고 할 말을 생각했다. 민준이 먼저 말을 꺼내주길 바랐지만, 민준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 그럴 생각은 없어보였다.
“만나서 반가웠어.”
“우리 돌아가는 날에도 볼 거야.”
“아… 그렇긴 하지. 그건 그거고, 아무튼, 반가웠다고.”
반가웠다는 과거형의 말이 작별로 들렸는지, 민준이 며칠 후면 다시 만날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네, 이게 끝이 아니네. 두 사람은 그 대화를 기점으로 걸음을 옮겨 역사 쪽으로 천천히 갔다.
“빨리 가서 씻고 싶다. 거의 이틀 동안 못 씻어서.”
“나도.”
“...나는 이제 가서 숙소 알아봐야겠다.”
“…그래.”
작은 역 건물을 통해 마을 쪽으로 나왔다. 오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이가 자연스러워졌다 생각했는데, 또다시 무언가 어색했다.
“난 이 쪽으로 가서 알아보려고.”
“그래. 오늘은 가서 뭐할 건데?”
“오늘? 아… 오늘은 그냥 쉬어야지. 오는 길이 너무 험난했잖아. 심심하면 마을 구경이나 좀 하구.”
“…어, 나도.”
민준이 뭔가를 더 말 할 줄 알았던 건, 그에 대해 너무 모르는 걸까. 눈치를 보듯 민준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의 말 줄임표는 항상 조금 긴 편이다. 마침 찻길의 신호등 불이 바뀌었길래 송이는 이 때라고 생각하고 먼저 발을 내디뎠다. 지금이 아니면 몇 번의 신호를 더 기다리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럼 나 먼저 갈게!”
“…그래, 여행 잘 하고. 조심해.”
“도민준, 너도!”
송이는 민준에게 크게 손을 흔들고는 얼른 길을 건너갔다. 드디어 많은 사람들의 틈에서 이 곳 로키 국립 공원의 방문객1이 되는 순간이었다. 길을 건너고 뒤를 돌아보니, 민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보인다.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치고, 송이는 다시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오후 시간이라 민박집을 구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만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싶었다. 송이는 빠른 걸음으로 마을 안 쪽을 향해 걸었다.
“……”
뚝. 송이는 문득, 길 한 가운데에 멈춰섰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그 길 건너편에 민준은 없었다. 벌써 어딜 간 건가.
“……”
송이는 후회했다. 민준이 없는 그 자리를 한참 동안 멍하게 쳐다보았다.
내일은 어디 가냐고, 물어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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