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남자와 별인 여자
# Hello, my stranger 23 본문
Hello, my stranger 23
[BGM] Re:plus - Let the story tell (edited)
“이 놈의 빵 쪼가리 지겨워 죽겠네.”
“맛있기만 한데.”
“그 쪽은 온지 며칠 안돼서 그렇죠. 나는 뉴욕에서부터 이런 것만… 어휴.”
샌드위치, 베이글 베네딕트, 파니니… 무슨 안에 들어간 재료만 다르지 다 같은 밀가루 빵이건만. 송이는 이 곳에서 유명하다는 브런치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다 말고 도로 내려놓았다. 민준은 칭얼대는 송이를 반찬 투정하는 어린 애 보듯이 보고 있었다.
“아아, 우리 한식 먹으면 안돼요?”
“무슨 미국까지 와서 한식을 먹어요.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진짜 나랑 여행 스타일이 안 맞네.”
하루에 2번 아침과 점심에 커피를 마시는 것, 저녁 먹을 때 맥주나 와인을 함께 먹는 것, 일몰 보는 걸 좋아하는 것, 영화나 음악 취향이 비슷한 것,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지루해하지 않는 것,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걷거나 자전거 타는 것도 즐기는 것 – 다른 것들은 다 맞는데 단 한 가지, 입맛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맞지 않는다고 정의해버린다. 송이는 억지로 샌드위치를 집어먹으며 ‘살다 보면 서로 음식 취향 비슷한 게 중요한데.’ 라고 중얼거리고, 민준은 그 말에 소리 없이 웃는다.
“뭐… 생각해볼게요.”
“아싸.”
진짜 어린 애도 아니고, 송이는 민준의 생각해본다는 말에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좋아한다.
첫 날, 우연한 오후에 만난 우리는 해가 진 후 2시간쯤 후 헤어졌고, 둘째 날, 11시에 만난 우리는 정확히 하루의 절반을 함께 있었다. 우리는 오늘도 시간을 아까워하기로 해 조금 더 일찍 만나기로 했다. 송이는 어제처럼 늦지 않기 위해 30분 먼저 호텔을 나섰는데, 이미 민준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일찍이었냐면, 지금 이 브런치 레스토랑이 문을 열지 않아 한참을 기다려 들어올 정도였다.
지겹니 맛이 없니 어쩌니 하면서도 그와 함께 제일 첫 번째 손님으로 샌드위치를 먹는다는 사실이 그저 좋기만 하다. 그렇다고 조증처럼 막 좋다는 건 아니고, 뭐, 조금 좋다고-
“뭐 하는데요?”
“한식 먹고 싶은 거 리스트.”
송이가 계속 신나보이는 표정을 한 채 냅킨 위에다가 뭔가를 계속 끄적이자 맞은 편에 앉아있던 민준이 몸을 내밀어 쳐다본다. 민준이 너무 가까이 들이대서 송이는 움찔하며 약간 몸을 뒤로 기울였다. 냅킨엔 김치찌개, 떡볶이, 라면… 음식 이름들이 쓰여있는 걸 보고 민준이 피식 웃는다.
“누가 보면 한 몇 달은 한국 음식 못 먹은 줄 알겠네요.”
“내 마음이거든요.”
“설마 개불, 뭐 이런 거 쓰는 건 아니죠? 여긴 그런 거 없어요.”
“......?”
아. 말하고 난 후 정확히 3초. 두 사람의 표정이 바뀌었다. 민준은 괜히 재빨리 옆으로 시선을 돌리고, 송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민준을 빤히 보았다.
“아니… 내 말은 여긴 내륙이라 해산물 먹기가 힘들다 뭐 그런...”
“......”
귀 끝이 빨개졌다. 무슨 불이라도 날 것처럼 엄청 빨갛다. 송이가 별 말도 없이 그저 한 쪽 눈썹을 치켜올린 채로 쳐다만 보고 있자 민준이 남은 주스를 다 마셔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 먹었으면 이만 가죠. 급히 가게를 나서는 민준을 뒤따라 나선다. 같이 가요-
가게를 나서니 이제 이른 오전의 거리는 활기를 찾고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빨간 귀를 한 뒷모습을 찾아 얼른 옆자리를 차지한다. 어느 지친 저녁, 나를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의 깜짝 선물 이야기는 그가 부끄러워할까 봐,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 때로 미루고서는 오늘도 맑은 날씨에 대해 감탄을 늘어놓는다. 아직도 괜히 딴 곳을 보고 있는 민준을 흘깃 살피며 혼자 웃었다. 가끔 그가 저를 보고 혼자 조용히 웃는 것처럼.
“어머, 한국 사람이다.”
저 가게에서 나오는 노래 좋다, 저기 가보자, 방금 지나간 사람 되게 잘생겼다 - 그냥 생각나는 대로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하면서 걷다, 강 위의 짧은 다리 위에서 정면으로 다가오는 동양인 무리를 발견했다. 송이는 흠칫 놀라며 민준의 등 뒤로 숨었다.
“중국인 같은데…”
“이거 왜 이래요. 중국 사람들도 다 나 알아요.”
바짝 더 붙어 서는 송이에게 민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지만, 사람들이 점점 가까이 오자 송이가 눈에 뜨이지 않게 숨겨준다. 시끄러운 중국어 대화를 들으니 다행히 한국인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갑자기 민준에게로 접근해왔다. 혹시, 민준을 알아본 건가- 두근, 순간 오만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그래, 너무 대놓고 같이 다녔어. 아무리 알아보는 사람 없는 곳이라지만…
“Excuse me, Picture, picture, please.”
“...아…”
그들 중 한 명이 어설픈 영어 발음으로 카메라를 내밀며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했다. 잠깐 긴장했던 듯한 민준도 안도하며 흔쾌히 카메라를 받아들었다.
“어우씨...깜짝이야.”
송이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민준이 사진을 찍어주는 동안 혹시나 자신을 알아볼까 뒤돌아 서서 기다렸다. 아주 잠시 두 사람의 사진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리는 상상을 했다. 뭐 제대로 해 본 것도 없는데, 안 되지, 안 돼.
잠시 후, 다 됐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그 중국인들이 민준에게 당신도 찍어주겠다며 그의 어깨에 매어진 카메라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어 뒤에 있던 송이도 함께. 당황한 송이가 괜찮아요, 잇츠오케이, 메이꽌시, 3개 국어를 구사하며 만류했지만 민준은 땡큐를 외치며 카메라를 건네고 있었다.
“뭐 해요, 사진 찍어준다는데.”
“됐어요, 혼자 찍어요.”
“혼자 찍으면 뭐하러 남한테 부탁해요. 우리 같이 찍은 거 없잖아요.”
“...안 되는데…”
안 된다고 중얼거리면서도 몸은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민준에게로 간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민준의 옆에 서고는 눈치를 살피니 아무래도 저 중국 사람들은 송이를 모르는 듯 했다. 그저 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 사진을 잘 찍어주려 구도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중국 사람들도 다 안다면서요.”
“...중국 인구가 워낙 많으니까…”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의 가까이 붙으라는 제스처에 민준이 조금 더 다가와 송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냥 그 손길을 내버려둔다. 그 약간의 긴장과 두근거림을 안고 렌즈를 향해 활짝 웃었다. 찰칵. 시작이 어려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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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좀 와요.”
“먼저 가라니까요. 난 뒤에서 쫓아갈 테니.”
“아무도 안 본다니까.”
어디서 누굴 만날 줄 알고. 같이 다니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어쩌려고. 송이는 그 이후로 민준과 멀찍이 떨어져서 다니기 시작했다. 민준은 보폭을 맞춰준다고 뒤쳐지는 송이를 기다려도 주고 빨리 오라고 재촉도 해보았지만 송이는 오히려 민준의 등을 떠밀며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한다.
“이럴 거면 뭐하러 같이 다녀요. 따로 다니지.”
“조심해서 나쁠 거 없단 얘기잖아요.”
“뭘 조심해요. 파파라치? 열애설?”
“그런 거 안 당해봐서 모르죠? 얼마나 곤란하고 귀찮은 일인데요.”
“…살다보면 곤란하고 귀찮은 일 있을 수도 있지.”
송이는 자신은 걱정이 가득한데, 민준의 태연한 반응이 답답하기만 했다. 이 사람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만약에 열애…뭐 아무튼 그런 소문 같은 게 나면, 그 후론 사람들 시선 때문에 더 만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걸. 송이는 민준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둘 사이의 선을 그었다.
“아무튼, 좀만 떨어져서 걷자고요.”
“나는 내 눈 앞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
민준은 아쉬운 말을 흘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뒤를 돌아 먼저 발걸음을 옮긴다. 그 말에 송이도 잠시 아쉬움을 느낀다. 누군 안 그러고 싶은 줄 아나. 어쨌거나, 그래도 은근히 말을 잘 듣는다.
오늘은 동쪽으로만 가자며 목적지는 정하지 않은 채 걸었다. 도시의 작은 골목들로 들어서니 걸어도 걸어도 거의 같은 모습만 이어진다. 하지만 연한 벽돌색의 건물들과 파란 하늘의 어우러짐이 예뻐보여서 송이는 민준에게서 빼앗은 카메라로 계속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슬쩍, 민준의 뒷모습도 프레임 한 쪽에 담아서 찍어보기도 한다.
“...흐.”
방금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는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나란히 걷지 못하면 어때. 지금 같은 거리에 있는데, 같은 도시에 있는데, 이 넓은 세상 위에서 보면 작은 점에 불과할 곳에 함께 있는데, 뭐 어때. 이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
사진을 넘겨가며 보다 조금 전 같이 찍은 사진에서 멈춘다. 아까 봤는데도 또 본다. 조명도 좋고 풍경도 좋고, 사진이 정말 예쁘게 잘 나왔다. 조금은 어색한 게 느껴지긴 하지만.
“아이고.”
카메라의 LCD에 한 눈을 팔며 걸었더니 돌부리에 걸려 잠시 삐끗했다. 똑바로 걸어야겠단 생각에 카메라를 어깨에 매고 고개를 들었다.
“......?”
그러나 앞에서 있어야 할 민준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눈을 돌려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옆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보아도 없다.
덜컥, 겁이 났다. 그 느낌은 처음이 아니었다.
‘…금방 갔다 올게요. 바로 여기 앞에 까지만.’
‘아, 아니…저…’
차마 가지 말라는 말은 못하고 그의 옷깃 끝만 붙잡아야 했던 때. 그래서 혼자 남겨져서 사라진 그를 마냥 기다려야만 했던 때. 아주 긴 시간의 악몽이었던 때가 떠올랐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그 때의 그 곳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민준은 저 앞의 갈림길로 사라졌고, 곧이어 정체를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렸고, 희뿌연 연기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두려워했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도민준…”
그 때의 나는 그 사람이 필요했다. 그 순간의 두려움을 떨치고 의지할 사람이 그 사람뿐이었다. 만약 다른 누구와 있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다른 그 사람을 찾았겠지.
“...도민준!!”
지금의 나에게도 그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이어야만 한다. 더 이상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이 내 일상에, 내 삶에.
“도민준!”
송이는 발걸음을 재촉해 교차로 쪽으로 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없다. 불안한 입술을 스치고 그냥 내뱉어지는 그의 이름. 매캐한 연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목이 메고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만 같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를 찾았지만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도 몰랐다. 갈림길의 중앙에 서서 가려 했던 방향도 잃은 채 빌었다. 그 여름에, 앞에 나타나 달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하겠다고 했던 자신의 생각을 후회했다. 그 때가 마지막이었으면 안 되는데…
“뭘 그렇게 사람을 불러요?”
“......!”
다행히 정말 마지막은 아니었다. 앞으로 난, 그와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정의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그의 목소리를 향해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냐고, 의아한 표정으로 송이를 보고 있는 민준.
“...뭐예요! 놀랐잖아요! “
“왜…”
“갑자기 사라진 줄 알았잖아요. 가면 어딜 간다고 말해야 할 거 아니에요!”
“......”
송이는 민준을 보자마자 왈칵, 그 두려움을 토해냈다. 갑자기 화를 내는 송이를 보고 민준이 더 놀란 듯 했다.
“아니 난....”
당황해서 말문마저 막힌 듯한 민준의 손엔 2개의 음료수 병이 들려 있었다. 송이는 그제야 자신이 불과 조금 전에 지나가는 말로 목이 다르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잠깐 저기 편의점 갔다 왔는데.”
“…하아...”
송이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별안간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났던 걸 진정시키려는 것과 그가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섞인 한숨이었다. 아직도 놀란 가슴이 두근거린다. 화를 낼 일이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왜 그리 놀랐는지도 모르겠다. 송이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고개를 들어 민준에게 투정 부리듯이 말했다.
“다음부턴 말도 없이 없어지고 그러지 좀 마요.”
“…알았어요.”
민준은 송이의 알 수 없는 그 심정을 이해한 건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받아들인 건지 더 이상 묻지도 않고 알았다고 대답한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
“……”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민준은 되레 자기가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음료수를 하나 뚜껑을 따서 송이에게 건넨다. 송이는 머뭇거리다가 음료수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다 마셨냐 물은 민준이 다시 병을 가지고 가 뚜껑을 닫아 자신의 가방에 넣는다. 마시고 싶을 때 얘기해요. 고개를 끄덕. 그럼 이제 갈까요. 또 끄덕.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던 것, 혹여 누가 우리를 볼까 봐 걱정했던 것, 그런 것들은 잊기로 한다. 사실은 언제든 볼 수 있게 이렇게 나란히 있는 게 더 좋으니까, 우리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의 이 시간에 있으니까.
#
5달러 밖에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패스트푸드점에 왔다. 빵이 지겹다고 했지만 이 곳을 그냥 지나칠 수도 없었다. 가던 길이 어딘가 와 본 곳이라 생각했던 민준과 송이는, 정신 없던 그 날 중 유일하게 또렷하게 기억나는 빨간 간판의 햄버거 가게를 발견하고 숨어있던 장소를 찾은 것 마냥 반가워했다. 더 이상 빅맥 세트 1개를 나누어 먹을 필요도 없고, 그가 감자 튀김을 한꺼번에 2개 집어간다고 뭐라고 할 필요도 없었다. 공유할 수 있는 같은 기억을 나누고 웃기만 하면 된다.
“그런 냄새랑 고통은 처음이었다니까요.”
“난 군대에서 겪은 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아, 화생방 훈련?”
“네. 생각만 해도…으으.”
“그 때 그 쪽 얼굴 봤어야 하는데. 눈물 콧물이 막…”
“거 참. 그건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잖아요.”
가게 한 켠에 마주 보고 앉아 지난 여름 시위대가 터트린 최루 가스에 난생 처음 겪었던 엄청난 고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때는 계속 고통스러워하는 민준을 보며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괜찮다는 걸 아니까 지나간 에피소드가 되어버린 그 때를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 눈물, 콧물에 침까지 흘리고, 눈은 시뻘개서, 장난 아니었는데 – 과장된 표정과 손짓으로 그 때의 민준을 묘사하는 송이에게 민준은 그걸 가지고 놀리냐고 화를 낸다.
“그 때 사람들이 우리 쳐다보던 거 봤어요? 무슨 동물처럼 보고.”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죠.”
창피해서 일본인인 척 하려고 그랬다니깐요. 항상 완벽한 모습만 보여야 했던 두 사람의 꽤 볼만 했던 ‘꼴’을 생각하며 또 한 번 웃었다.
“아무도 우리를 연예인이라고 생각 안 했을 거예요.”
“지금도 그럴 걸요.”
민준이 웃음 끝에 넌지시 한 말에 송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게를 절반 정도 채운 사람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단 한 번도 궁금해 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들도 두 사람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무슨 사이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어떠한 관심도 없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완벽함에도, 아무도 쳐다보지도,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궁금해하지 않는다. 언제나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아졌을 때. 그래서 이 순간이 더 완벽해진다.
“좋다.”
“뭐가요.”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굉장히 평범한 패스트푸드점의 평범하디 평범한 풍경을 보고도 좋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송이가 웃으면서 감자 튀김을 민준의 자리에 있는 케첩에 찍어 먹는다. 칼로리 신경 쓴다는 사람이 뭔 케첩을 그렇게 많이 찍어 먹어요. 와, 케첩 가지고 되게 뭐라 하네. 선배는 내가 감자 튀김 2개 먹는다고 뭐라 했잖아요. 그것도 기억하고 있다니,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 말도 안 되는 걸로 투닥거리는 것도, 좋다. 그러다가도 결국엔 그냥 웃고 말지만.
송이는 여기에서 만난 이후로 그가 예전과 달리 유난히 자주 웃는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근데 이제 그거 안 해요?”
“어떤 거요?”
“입꼬리 간수하니 어쩌니…하던 거.”
“아…”
눈길이 자주 머물게 되는 그의 독특한 입술 끝을 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예전에 이 곳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는 듯한 그 입술이 잠깐의 머뭇거림 후 더 활짝 휘어진다.
“안 해요.”
“……”
“하지도 못하고. 이제.”
#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걷고, 말하고, 걷고, 다투고, 걷고, 웃고… 이런 것 밖에 안 했는데 시간이 어딘가에서부터 어디까지 잘려 사라진 것만 같았다. 하도 많이 걸어서 송이가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대는 바람에 돌아가는 방법으로는 버스를 택했다. 길을 잃고 헤맬 필요도 없이 지도 어플을 켜 돌아가는 교통편을 확인하고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의 벤치가 더 길었으면 하고 바랐던 게 언제였던가. 벤치 한 가운데에 나란히 앉아있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건, 이제 1살의 나이가 더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나눌 게 없었던 우리는 이제, 나눌 수 있는 수 많은 이야기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 저거다.”
기다리던 버스가 오고, 사람이 거의 없는 한가한 버스에 올라탔다. 여러 번 확인한 잔돈을 지불하고, 버스 뒷편의 해가 지는 방향의 자리에 일부러 앉았다. 햇살이 유리창을 지나, 달리는 버스의 소음 위에 앉는, 눈이 부신 자리에. 나 버스 엄청 오랜만에 타 봐요. 서울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몰라. 송이가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설레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요즘에도 가끔 타고 다니는데. 나중에 같이 타볼래요? 민준이 장난스레 말한다. 나 같은 여자는 아무리 가려도 티가 나요. 송이가 장난스레 대답한다.
“……”
송이는 천천히 움직이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정확한 색을 말할 수 없는 붉고 노란 빛의 햇살이 코 끝이 찡할 만큼 아름답다. 단순히 여기가 샌 안토니오여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서울에 있었더라도, 10여 시간 후의 나는 이 일몰을 보고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볼 기회가 여태껏 없었을 뿐. 이건 내게 찾아오기 힘든 순간이다.
따스하고 반짝이는 햇볕에 눈을 반쯤 뜨고 흔들리는 풍경을 눈에 담는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조용히 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동안, 그의 눈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을 것이다. 그 시선의 끝이 다를 뿐인 그는, 아마도 나를 보고 있을 것이고. 그렇게 이어진 시선을 알기에, 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내버려둔다. 나를 보는 그 어떤 수 백의, 수 천의 눈보다 나를 긴장케 하고 또 편안하게도 하는 시선.
3번째 정류장을 지나고 나서, 교차로의 긴 신호에 멈춰 있을 때였다. 무릎 위에 올려져 있던 송이의 손 아래의 틈으로 민준의 손이 밀려들어왔다. 손바닥을 맞추고, 손가락 하나 하나의 위치를 찾아 같은 손가락들이 그 사이를 메운다.
“……”
송이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민준을 보았다. 계속 저를 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눈이, 창 밖의 먼 곳을 보고 있다. 아닌 척, 모른 척은 정말 잘한다. 송이는 티 나지 않게 혼자 작게 웃고는 맞잡은 무릎 위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에 살짝 밴 땀 때문에 두 손이 더 빈틈없이 닿은 느낌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엄지가 손등을 쓰다듬는다. 여전히 나쁘다고 생각하는 손버릇. 일부러 그러는 건지, 무의식 중에 그러는 건지. 별 것도 아닌 걸로 감정을 간지럽히는 버릇. 다른 사람한테도 이러냐고 묻고 싶지만, 뻔뻔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다.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저기요.”
“…왜요.”
“나 지금 이 말 다시 할 거예요.”
“……?”
다시 눈을 들어 그를 불렀다. 먼 곳으로부터 그의 시선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송이는 잡혀있기만 했던 손에 힘을 주어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지금, 우리를 찾으러 올 사람은 없어. 혹시나 그렇다 해도, 나는 멈추지 않을 거야.
“그 때, 그거.”
“……”
“진짜 3번이었어요. 일부러 거짓말 한 거…아니라구요.”
Maybe it’s time to let the story tell
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왠지 연휴 중에 한 번은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아아 능력에도 없는 2n 편 쓰려니 힘이 후달리는 것을 느끼는 요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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