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남자와 별인 여자
# Hello, my stranger 22 본문
“무슨 여자가 맨날 이렇게 아무데서나 자는지…”
Hello, my stranger 22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정신을 놨나, 시차 적응이 안돼서 헛것이 보이나, 나도 모르게 이 인간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건가. 아닌데, 별로 생각 안 했는데. 안 바쁘나 조금 궁금해 하고, 문자 조금 기다리고, 지금 쯤 뭐 하나 조금 생각하고… 아주 조금 그랬을 뿐인데.
“……”
“……”
눈을 뜨니 맞은 편에 앉아있는 사람이 민준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도 되지 않고 앞뒤도 맞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여기는 샌 안토니오 리버워크의 어느 작은 카페인데. 어떻게 네가 여기에, 어째서, 왜.
다른 곳을 볼 수 없게 고정된 시선 안에 약간은 들떠있는 민준의 표정이 보인다. 아마도 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말도 안 돼서 조금이나마 생각한 적조차 없는 이 상황에선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하나, 견디기 힘든 이 공기가 숨까지 턱 막히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이 숨 막히는 순간을 민준이 먼저 깨뜨려 주었다.
“원래 내일 모레 한국 간다면서요.”
“...그 쪽이야 말로... 여기가 유럽이에요?”
조심히 말을 꺼내지만 여전히 둥둥 떠다니는 꿈 속에 찾아온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만 같다.
“일정이 전부 다 미뤄졌어요.”
“왜요?”
“뉴스도 안 봐요? 거기 며칠 전에 일어난 테러 때문에 난리인 거.”
“...뉴스 볼 시간 없거든요.”
“그럼 선배는요.”
“...나도 뉴욕 후반 일정이 취소되어서...그 김에 좀 쉬려고…”
말인 즉슨, 송이가 갑자기 취소된 일정을 핑계 삼아 개인적인 휴가를 온 것처럼, 민준도 장기 유럽 스케줄이 현지 사정으로 취소가 되어 생긴 공백에 여행을 왔다는 것이다. 이 곳에 오게 된 연유는 그러했다. 뭐 올 수 있게 되었으니 왔겠지. 일 뿌리치고 도망 온 것도 아닐테고.
“그래서 이거... 우연이에요?”
그런데 왜 하필 이 곳이냐는 거다. 두 사람 모두 갑작스런 휴일을 보낼 곳으로 이 수 많은 나라와 수 많은 도시 중 샌 안토니오를 택할 확률. 그 헤아리기도 힘든 확률은 대체 얼마나 되려나.
“…뭐든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
작게 웃으며 답하는 민준의 말에 왠지 모르게 벅차오름이 느껴졌다. 맞다, 그런 확률을 따지기엔 늦었다. 이미 서로 마주 하고 앉아있는 이 순간의 확률은 1이니까. 우연이면 우린 같은 생각을 한 것이고, 필연이어도 우린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이유를 묻고 싶어도 어차피 되돌아올 대답은 서로 같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
“……”
앞에 있는 사람이 헛것도, 환상도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나니,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마주 하고 있던 시선의 한계가 찾아왔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고개를 겨우 옆으로 돌려 갑자기 빨려 들어간 트랩에서 빠져 나온다. 테이블 위의 커피를 덥석 집어 한 모금 크게 마셨다가 뜨거워서 혼이 났다. 민준이 급히 티슈를 뽑아다 건네고 송이는 다시 한 번 쪽팔리다고 생각했다. 커피가 채 식지도 않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괜찮아요?”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요.”
이 놈의 주둥아리는 그냥 괜찮다는 말만 하면 되는 걸 꼭 신경 쓰지 말라는 쓸데없는 말까지 덧붙인다. 커피를 무릎 위에 약간 흘려 조금 뜨겁긴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휴지로 대충 닦아낸다. 그러고 나니 다시 처음의 침묵이 찾아왔다. 아. 이 다음엔 또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이 다음 순간부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언제나 말이 없고 굳게 입을 다문 모습이 더 익숙한 민준을 보며 컵을 만지작, 커피가 좀 더 식기만을 바라고 있다.
“앞으로…여기서 뭐 할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도 민준이 먼저 물었다. 조금은 의외였다. 의외가 아닐 지도 모른다. 그가 먼저 다가왔던 찰나의 순간들, 그가 먼저 보냈던 문자들, 그가 먼저 지켰던 약속…
“뭐… 쉬러 왔으니 쉬는 거죠. 구경할 겸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고.”
“잘 됐다. 난 계획 하나도 안 세우고 왔는데, 같이 하면 되겠네.”
민준의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가 크게 되돌려 받았다. ‘같이’. 그 말에 유독 강하게 반응한 마음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얼굴도 빨개졌을 것이다.
“...네? 뭐…뭔 소리에요. 누가 뭘 같이 한다고.”
“뭐 어때서요.”
“나 혼자 쉬러 왔는데, 귀, 귀찮게 누구 달고 다닐 생각 없어요.”
아, 이건 정말 마음과는 반대로 말이 내뱉어지는 거다. 당황스러워서 얼떨결에 나온 말을, 하면서도 후회했다. 이런 스스로에게 실망하려던 찰나,
“…아. 그래요.”
“......”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시큰둥한 민준이 더 실망스러웠다. 아니, 한 번은 더 물어봐야지. 지난 번에 밥 먹자고 할 때도 한 번 밖에 안 물어보더니. 삼 세 번이라는 말이 왜 있는데. 너무 한 거 아닌가. 많이 봐줘서 두 번만 물어봐도 그러자고 대답할 텐데 - 귀찮다고 말한 건 송이는 본인이었지만 민준의 싱거운 반응에 더 민망해졌다.
“그럼, 전 이만.”
“즐거운 여행 되세요, 선배님.”
“...뭐라고요?”
“즐거운 여행 되시라구요.”
“...하. 네, 그 쪽도 즐.거.운. 여행 되세요.”
약간 심통이 난 마음으로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민준은 자리에 앉은 채로 고개만 들어 송이를 올려다보며 얄밉게 인사한다. 즐거운 여행 되라니! 지금 누구 놀리나. 어이가 없어서 똑같은 말에 지금의 감정을 실어 대답하고는 휙 뒤돌아 섰다. 돌아서자마자 표정을 구기며 이게 아닌데, 또 후회를 했다. 그래도 민준이 한 번은 더 물어보지 않을까, 설마, 붙잡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가도, 아니야, 도민준이 그럴 성격이야? 에라이, 그냥 내가 지난 번처럼 왜 또 안 물어보냐고 화 내면서 모른 척 다시 자리에 앉을까 – 혼자 자아분열을 일으킨다.
“……”
그런 갈팡질팡한 생각을 하며 무작정 반대편으로 한참을 걸어나왔는데도 민준은 저를 부르지 않았다. 송이는 어느 정도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보이는 카페의 테라스엔 민준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나쁜 놈. 역시나 그런 놈이야. 내가 기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니까.
#
“에이씨. 이 놈의 입.”
더 나쁜 년은 너지, 천송이. 그러니까 여기가 서울도 아니고 무려, 샌 안토니오인데.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떠나왔을, 수 천 킬로미터의 여정이었는데. 거기서 그렇게까지 말한 건 없잖아, 이 멍청아. 같이 가자는 말 못할 거면 밀어내는 말이라도 하지 말아야지.
속으로는 오만 원망과 자신에 대한 욕이란 욕은 다 하면서 힘이 다 빠진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꽤 있는 거리로 나오니 갑자기 완전히 혼자가 된 기분이다. 원래 혼자 왔는데, 혼자이려고 온 곳인데. 언제는 혼자가 아니었다고. 딱히 갈 곳을 정해놓은 것도 아니라 발길이 닿는대로 그냥 걸었다.
‘그럼 못 보겠네’
아쉬움만 남기고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그와의 마지막 문자가 떠올랐다. 평온하게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마음이 더욱 더 어지러워졌다. 나는 쉬고 싶었다. 생각나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어쩌면 민준은 그저 이 곳이 아름다워서, 그 때 제대로 즐기지 못해서, 아는 곳이어서… 단순히 그런 이유로 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이유라기엔, 우리의 그 여름의 시간들은 너무 아쉽고 그리운 것이었다. 드라마가 아닌 그냥 천송이와 도민준일 수 있었던 그 반나절의 짧은 시간, 무언가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그 찰나의 순간들…
“……”
멍하니 바닥만 보며 걷다 문득 고개를 드니 어딘가 익숙한 곳이었다. 맑은 하늘, 차가 없는 넓은 거리, 길게 늘어서 있는 낮은 건물들… 플라워샵, 작은 레스토랑 몇 개, 조금만 더 가면 가봐야지 생각만 하고 못 가본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 촬영을 하다 예상치 못한 시위에 휘말렸던 바로 그 골목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골목. 아쉽고 그리운 그 시간들의 시작.
송이는 한숨을 쉬며 다시 걸었다. 샌 안토니오에서 다시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요즘 자주 듣는, 이 곳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4화 엔딩 씬에 흘렀던 OST 음악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 곳을 지나갈 때 혹시나 또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했던 걱정도 들지 않았다. 시위 같은 건, 벌써 두 번이나 겪었다. 그 때 한 번, 조금 전에 또 한 번.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
왈- 개가 짖은 소리에 땅만 보고 걷던 송이가 그제서야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강아지다. 이 골목 가운데 즈음의 어느 상점 앞을 지키고 있던 하얀 털에 큰 까만 무늬가 있는 강아지. 강아지라기엔 좀 큰 것 같다고 민준이 말했지만. 어쨌거나 몇 달이 지났으니 정말 강아지가 아닐 지도 모른다. 나중에서야 저 개의 종 이름을 알았다. 잉글리시 쉽독. 털로 눈이 다 덮여 어딜 보고 짓는지 알 수 없는 그 강아지를 보니 송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두 번째로 보았을 땐 약간 겁을 먹은 상태라 그냥 지나쳤었는데, 다시 만나게 되니 또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얘도 날 기억하고 있을는지.
“야, 이제 간식 다 먹고 없다니깐.”
강아지가 다시 한 번 왈, 짖었다. 아마도 아까는 앞에 서 있는 사람을 향해 짖은 것이고, 이번에는 송이를 보고 짖은 것일 테다. 강아지를 보며 서 있던 남자가 그 소리가 향한 곳을 따라 돌아본다. 송이를 본 그가, 손을 뻗어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거 봐, 내가 그 누나 곧 온다고 했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 아, 쟤 이름을 찾으면서 알게 된 건데, 사실은 꼬리가 거의 없어 엉덩이를 흔드는 거라더라. 송이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웃고 있는 눈 앞의 민준을 바라보았다. 울컥하는 마음을 어떻게 숨겨야 할 지 고민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분명 우리는 이 곳에서 어떠한 변화를 겪을 것이다. 오랜 시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할 것이고, 오해하고 미워한 마음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과연 그것들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너무 오랫동안 ‘생각’으로만 존재했던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제 같이 가도 돼요?”
이번엔 민준이 강아지가 아닌 송이에게 물었다. 한 번은 더 물어봐야지, 라고 투정 부렸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그렇다는 대답이 목 끝까지 올라왔는데도 나오질 않는다.
“앞으로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 좀 하지 말아요.”
“……”
“나는 알아듣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이 진짠 줄 알아요.”
거슬리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의 백색 소음에 그의 목소리가 섞여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와 엮이기 시작한 이후로 늘 불안했던 마음은 삐뚤어진 이야기만 하게 만들었었다.
송이는 대답 대신 그와 똑같은 말로 맞받아쳤다. 우리가 가진 이상한 대화 방식.
“그 쪽이야 말로, 말 좀 다정하게 해요.”
“……”
“똑같은 말이라도 어디 좀 좋게 말해주면 덧나나.”
“...오케이, 노력해 볼게요.
민준이 소리 없이 크게 웃으며 답한다. 송이는 그가 웃는 걸 확인하고서는 그제야 반가운 인연에게로 다가간다. 간식이라도 더 바라는 것처럼 헥헥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강아지 앞에 서서 안녕, 손을 내밀었다. 기억을 하고 있는 건지 그냥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다 좋아하는 건지, 온 몸으로 반가워하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왜냐면 그를 끌어안을 수는 없었으니까.
더 이상 얻어먹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강아지는 또 한 번 왈왈 짖고는 가게 안으로 훌쩍 뛰쳐 들어가버린다. 그렇게 둘만 남겨지고, 이제는 피하는 척도 할 수 없는 민준과 마주섰다.
“갈까요?”
민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길을 나섰다. 민준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보폭을 맞춰주었다. 걸음의 속도를 늦추자 그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저녁 먹을까요, 너무 이른가.”
“네, 이따가 먹어요. 좀만 더 걷다가.”
“그러죠, 뭐. 선배는 언제까지 쉬어요?”
“그건 왜요.”
“그런 것도 못 물어봐요?”
“…일주일이요. 어제 왔으니까 이제 6일 남았네요. 그 쪽은요?”
“유럽 일정 통째로 비었으니까, 한 2주 정도?”
“와, 좋겠다. 그 기간 내내 여기 있을 거예요?”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가 가고 싶은 데 있으면 다른 데도 가고… 정해놓은 계획은 없어요. 지금처럼.”
지금처럼, 결국엔 그와 함께 또다시 걷는 길. 송이는 민준과 나란히 걸으며 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눈들은 더 이상 없었다. 이건 촬영이 아니다. 손을 잡고 골목을 내달려, 저 멀리 도망가지 않아도… 아무도 우리를 보지 않는다. 액션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도, 컷이라는 말로 끝내는 것도 없다.
#
“미쳤다, 미쳤어!”
새벽까지 뒤척이다 아주 늦게 잠이 들었다.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 된 걸까. 눈을 떴을 때 이미 방 안까지 길게 들어온 햇살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10시 50분. 민준과 11시까지 만나기로 했는데. 분명 알람을 맞춰놓긴 했지만 끄고 다시 잤는가보다.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침대를 벗어났다. 급히 씻고, 뭐 입을 지 고민할 새도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옷을 입었다. 화장도 선크림만 대충 바르고선 호텔방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무 컬러나 챙겨온 립스틱을 바르고 덜 마른 머리를 정리했다.
“……?”
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왔지만 곧 다시 멈추었다. 호텔 로비에서 민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여기서 만나기로 한 건 아니었는데. 어제 호텔 앞까지 데려다 주는 걸 암말 없이 내버려뒀더니, 오늘은 마중까지 나와 있다. 송이는 자신을 발견하고 웃는 민준을 보며 어제와 같은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사실은 기분이 좋았지만 아닌 척, 표정을 숨기고 민준에게 다가갔다.
“미안해요. 늦잠을 자서.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된 건지, 밤에 잠이 잘 안 오더라구요. 그래서…”
“안 물어봤어요.”
만나자마자 주절 주절, 늦은 이유에 대해 늘어놓았더니 민준이 어깨를 으쓱,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민준이 빤히 보고 있길래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장도 안 했는데 뭘 그렇게 보는지.
“근데 뭐하러 여기까지 왔어요?”
민준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 버릇 고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의도와는 달리 약간은 까칠하게 군 말투에도 민준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는 약간의 뜸을 들이더니 대답한다.
“시간이… 아까워서?”
“……”
또 다시 할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말하면 늦은 내가 뭐가 돼. 그 아까운 시간을 따라 여기까지 찾아왔을 민준에게 미안해졌다. 알람도 꺼버리고 잠든 자신을 뉘우쳤다. 아무래도 나도 이제 그 시간을 아까워해야 할 것 같아.
“…그럼 내가 커피 살게요.”
“좋아요.”
지금의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은 죄로 송이가 커피를 사기로 하고 어제의 그 카페로 향했다. 가는 동안 민준이 송이에게 거기 커피 좋아햐나고 물었다. 송이는 지난 여름 촬영 때 누가 사줘서 처음 먹었는데 딱 내가 좋아하는 맛이라고 대답했다. 민준이 그러냐고, 별 이유도 없이 웃고 있었다.
#
야외 테라스에 앉아있어도 그리 춥다고 생각되지 않는, 딱 좋은 기온. 맑은 하늘, 따스한 햇살, 잔잔하게 흐르는 강,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아직도 푸르른 아주 커다란 나무, 여유로운 사람들과 여유로운 음악, 따뜻한 커피, 그리고… 도민준.
“……”
테이블 위에 놓여진, 노란색 홀더가 끼워진 잔 2개, 아메리카노. 송이는 맞은 편에 앉아있는 민준을 보았다. 리버워크의 풍경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내 모습도 저러할까. 때마침 강 위를 지나가는 곤돌라를 보고 민준이 반가운 듯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송이를 돌아본다. 여기 와서 저거 탔어요? 고개를 저었더니 씨익 웃고 만다. 아마 우린 곧 저 배를 같이 타니 마니 하며 싸우고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결국엔 함께 타겠지만.
강가 쪽으로 비스듬히 다리를 꼬고 앉아,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배를 쭉 눈으로 쫓던 민준이 시선은 그대로 거기에 둔 채 손을 더듬어 테이블 위의 커피를 집어 마신다. 그건 내 껀데. 송이는 자신의 컵을 가져간 민준에게 굳이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이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송이와 민준이 샌 안토니오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이 상플 구상할 때부터 생각해놓은 큰 줄기 중 하나였어.
그 땐 당연히 우연으로 설정했거든.
‘둘 다 가슴 속에 그 추억을 품고 있었고, 현실에서 만나지 못하는 대신 그 추억을 찾으러 간다-‘
근데 쓰다보니 먼지들이 항상 송이가 다가갔으니 이젠 좀 민준이 다가가길 바라는 댓글들이 많더라고 ㅋㅋ
사실 시점이 안 나와서 그렇지 민준이도 혼자 많이 애썼는데… ㅠ ㅠ
아무튼 그래서 송이가 샌 안토니오 간 걸 어찌 알아내서 민준이 찾아간 걸로 할까,
아님 원래 생각했던 대로 우연으로 할까… 고민을 좀 했어.
근데 글에 나온 것처럼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더라!
우연이든 필연이든, 모든 건 똑같은 두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 결과이니까.
똑같이 그 때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결국엔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거라는 생각을 했어.
먼지들도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연인가, 필연인가-라는 것 보단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길!
천도는 운명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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