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남자와 별인 여자
# Hello, my stranger 17 본문
[bgm] 백예린 - That's why
I was walking on the bridge
People passed me by slowly
And the weather was cloudy
다리를 건너고 있었어
사람들은 천천히 나를 스쳐가고, 날씨는 흐렸지.
Felt so empty suddenly
It set my mood perfectly
It’s nobody’s fault, I know
But I have to blame it on you
갑자기 공허해졌고, 그건 내 기분을 완벽히 더 슬프게 했어.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아
하지만 난 너를 탓해야만 했어
Bet you would deny it,
That you’re always making me
Can’t fight with your gravity
Ain’t never ready for this
분명 넌 부정하겠지만,
너는 언제나 나를 너에게 끌리게 만들었어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That’s why, that’s why
I found why I got
All those feelings a lot of sadness
그래서였어
왜 내가 이 모든 슬픈 감정들을 느끼는지
Always you left me alone, me alone here
But you’re still there, in my heart
너는 나를 항상 여기 혼자 두었음에도
넌 여전히 내 가슴 속에 있어
You know, you should know
Why I cry
너도 알 거야, 알아야만 해
내가 왜 우는지
Like I said it on the verse
Everyday, you get on my nerves
You’re so good at pull and push
말했듯이, 넌 매일 내 신경을 건드려
밀고 당기기를 잘하지
I got worse at drying my tears
I felt like dying for these few weeks
When I see you around,
You make me feel damn alive
내 눈물은 마르지를 않고
지난 몇 주 간은 거의 죽을 것 같아
널 보고나서야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껴
Bet you would deny it
That you’re always making me
Can’t fight with your gravity
Ain’t never ready for this
분명 넌 부정하겠지만,
너는 언제나 나를 너에게 끌리게 만들었어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That’s why, that’s why
I found why I got
All those feelings a lot of sadness
그래서였어
왜 내가 이 모든 슬픈 감정들을 느끼는지
Always you left me alone, me alone here
But you’re still there, in my heart
너는 나를 항상 여기 혼자 두었음에도
넌 여전히 내 가슴 속에 있어
You know, you should know
너도 알 거야, 알아야만 해
Hope you know I tried
Hope you know I cried
내가 노력했다는 걸, 또 많이 울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You’re not forcing or anything
I’m always dragged by your eyes
넌 아무런 강요도 하지 않았는데,
난 항상 너의 시선에 끌려 다녀
I know I’ll be fine
As this time goes by
Even now, you’re breathing in me
Even now, you’re breathing in me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럼에도, 넌 지금 내 안에 숨 쉬고 있어
That’s why, that’s why
I found why I got
All those feelings a lot of sadness
Always you left me alone, me alone here
But you’re still there, in my heart
You know, you should know
Why I cry…
Hello, my stranger 17
#
“민준씨, 일찍 왔네.”
“네. 오늘 찍을 거 많잖아요.”
다음날, 촬영장에 예정 시간보다 일찍 와서 준비를 했다. 어제 병실 간이 침대에서 잤더니 몸이 찌뿌듯해서 스트레칭을 좀 하고 샷을 추가한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러 돌아다녔다.
“어제…촬영은 잘 하셨죠?”
“어제? 잘 끝났지.”
“별 일 없었나 해서요. 갑자기 일정이 바뀌어서…”
“다 준비 되어 있었던 거라, 별 상관없었어. 민준씨한테만 좀 미안하게 됐지. 천송이씨 스케줄 때문에…”
“아니에요. 저는 진짜 괜찮아요. 어차피 어제 오후에 할 거 오늘 오전에 하는 건데요, 뭐.”
어제 스태프들이 불평 했던 것들이 떠올라 감독님께 은근 슬쩍 여쭤보았다. 어제 갑작스런 일정 변경에도 별 문제 없이 마쳤나보다. 촬영장은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천송이 선배님은 무슨 급한 일 있으신가봐요?”
“광고 촬영인데 갑자기 일정이 꼬였대나 어쨌대나.”
“무슨…광고요?”
“몰라. 천송이씨가 찍는 광고가 한 두 개여야지.”
자연스럽게 송이에 대한 것까지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몸이 여럿이어도 바쁠 송이 정도의 연예인이 돌연 일정을 바꿔달라 요구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긴 하다. 그녀는 그저 바쁜 일정을 조율한 것뿐일 것이다. 그녀에겐 흔한 일일 것이다. 민준은 그렇게 되뇌며 준비가 한창인 촬영장을 좀 더 둘러보았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에게 전화해 안부를 확인하고 병원에서 주는 밥 다 먹고, 약 먹고, 하라는 대로 해라- 몇 가지 잔소리를 했다. 이모가 가게를 하시기 때문에 잠깐 밖에 돌봐드릴 수가 없어 걱정이었다. 어머니는 간호사들이 계속 챙겨준다면서 걱정 말고 일이나 잘하라는 말만 계속하신다.
마음 한 구석이 조금 불편했지만 어제보다 불안한 마음은 덜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연기에만 집중했다. 어제처럼 NG만 주구장창 내다 사람들의 한숨 소리를 듣는 일은 없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촬영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끼니도 거르고 쉬는 시간도 없이 몰입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이 들리고 나서야 시간을 보니 어느덧 해가 진 저녁 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일찍 끝이 났다. 일찍 끝났는데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제안에, 민준은 일이 있어 안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고선 급히 촬영장을 나섰다.
#
“죄송해요. 제가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 그으래? 뭐 어쩔 수 없지. 우리끼리만 회식하려니 허전해서. 천송이씨도 안 된다고 하구.
“다음엔 꼭 참석하겠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어머니의 병실로 올라가던 도중에 드라마 팀 스태프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들끼리 회식을 하러 왔는데 혹시나 시간이 되면 늦게라도 오라는 전화였다. 하는 수 없이 재차 거절을 해야만 했다. 다른 배우들이라도 갔는가 모르겠다. 송이는 광고 촬영을 한다더니 아직 바쁜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어머니 병실이 있는 층수에 내렸다.
“...이모 왔나?”
병실에 가까이 가니 엄마의 호탕한 웃음 소리가 복도 바깥까지 들려 이모가 와서 수다를 떨고 있나 싶었다. 익숙한 또 다른 웃음 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말이다.
“……?”
그 웃음은 언제나 모든 신경을 멈추게 한다.
“민준이가 조금 쪼잔한 게 있어-“
“맞아요, 제가 실수한 거 다 기억하고 있다니깐요?”
민준은 잠시 복도에 멈춰섰다. 숨 쉬는 것마저 멈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심장은 더욱 더 세차게 뛴다. 왜. 어째서. 민준은 끊어진 감정의 신경을 어렵게 다시 이어 붙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의 이름이 쓰여진 병실 앞, 문 중앙의 창을 통해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는 엄마…
“……”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에 관한 것이라면 너무도 오랜 시간을 억누르고 살았던지라, 이렇게 갑자기 뚫고 나오는 마음이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걸까. 이대로 돌아서야 하는걸까. 매번 결국엔 돌아서는 걸 택했던 나는, 이번만큼은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물론, 그 전의 선택들도 쉬웠던 것만은 아니었지만.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갈지, 명확하게 결정을 한 건 아니었지만 뒷걸음질 칠 수 없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민준은 문을 열었다. 드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어머니와 송이가 동시에 문 쪽을 돌아본다.
“아들, 왔어?”
“…응.”
침대에 앉아 송이와 이야기를 하던 어머니께서는 민준을 보자마자 반갑게 맞아주신다. 송이는 민준이 지금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조금은 당황한 모습이었다.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자에서 어색하게 반쯤 일어난 자세로 주저하고 있는 송이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민준은 천천히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 상황을 미리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어머니께서 민준의 표정을 통해 알아차리시고는 먼저 말을 꺼내신다.
“동생이 여기 병원에 입원해있다네. 그래서 지나가다 들렀대.”
“……”
“어휴, 송이씨한텐 왜 얘기했어. 신경쓰이게.”
“에이, 아니라니까요, 어머니. 제 파트너인데, 당연히 알아야죠.”
송이가 금세 또 밝게 웃으며 어머니의 말에 응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마치 여러 번 만났던 사이처럼, 송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민준은 겸연쩍게 말없이 두 사람의 앞에 서 있기만 했다. 아주 잠깐의 적막이 느껴지자마자 송이가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이제 귀한 아드님도 왔으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래요, 늦었는데 어서 들어가요.”
“건강 잘 챙기시고, 쾌차하시길 바랄게요.”
별 거 아닌데 병문안 와줘서 고마워요. 별 거 아니긴요, 건강이 제일 중요한데. 아드님보고 신경 좀 써달라 하세요. 그러고도 한참을 인사를 나누고서야 송이는 병실을 나선다. 민준은 송이가 나가는 걸 보다가 배웅 좀 하고 올게요, 하고 송이를 따라나섰다. 어머니께서 얼른 가보라며 손짓을 하신다.
“……”
“……크흠.”
드륵. 병실을 나와 문을 닫고 나서야 복도의 송이와 마주 할 수 있었다. 또다시 찾아온 정적 후, 괜히 앞머리를 넘기며 헛기침을 하던 송이가 먼저 입을 뗀다. 이번에도 먼저 말하지 못했다.
“그…진짜 내 동생 여기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
“애가 아직 고딩인데 축구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진짜에요! 6층에…”
묻지도 않았는데 여기 온 이유에 대해 알아서 손짓 발짓 해가며 설명을 한다. 원래 안 와도 되는데, 부모님이 바쁘셔서 애가 하도 심심해 하길래...어쩌고. 송이는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동생이 정말 이 곳에 입원해 있다는 걸 강조하고선, 뭐라도 말해주기를 기다리 듯 입술을 다물며 민준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맨 얼굴에 편안한 차림의 송이. 주호와 선하가 아닌 순간은, 샌 안토니오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어머니 입원해 계신 거, 어떻게 알았어요?”
“아…음. 그게.”
송이는 눈동자를 굴리며 조금 망설이다 말을 잇는다.
“아니, 어제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이길래. 그 쪽 매니저한테 물어봤어요. 무슨 일 있냐고.”
“……”
“그랬더니 말해주던데요. 어머님 편찮으시다고…”
아무도 묻지 않았던 일.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던 내 기분.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보아주지 않았던 나. 유일한 조명 아래 서 있었지만 사실은 보잘것없었던 나를, 유일하게 보고 있던 한 사람.
“진짜 일부러 온 건 아니고… 동생 보러 온 김에.”
“……”
“아는데 모른 척 할 수도 없잖아요. 안 그래요?”
민준은 송이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송이가 뭔 사람이 대답이 없어- 라고 종알댄다. 제게 자주 하는 말이다. 목이 메여 말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나 있을까. 가끔씩 그랬던 것처럼 내 마음을 알아채줬으면 하고 바라는 건, 더 이상 미안해서라도 하지 못한다.
“아무튼… 어머님 잘 돌봐드려요.”
“…네.”
“그럼 갈게요.”
민준의 눈치를 보던 송이는 결국 먼저 돌아섰다. 혹시나 주제 넘은 일을 한 건 아닌지, 민준의 기분이 상한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것 같았다. 민준은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하고 우두커니 그 자리에 멈춰 선 채로 무거운 발걸음을 떼는 송이를 보았다. 그녀의 머리 위, 천장에 달린 큰 디지털 시계가 눈에 띈다. 오후 7시 45분. 아침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다.
“저기.”
그녀를 불렀다. 형식적인 선배라는 호칭도, 멀쩡한 세 글자 이름도 아닌, 저기. 그렇게 불렀을 뿐인데 그녀가 뒤돌아본다.
“……?”
내가 벗어날 수 없는, 천송이.
나는 그녀가 처음 학원에 왔던 날의 웃음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간절하게 원했던 배역의 오디션을 앞뒀을 무렵, 나는 우연치 않게 그 웃음 소리의 그녀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우연보다는 행운이었다. 하나인 줄만 알았던 꿈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게 되었다. 그녀와 함께 하길 바랐던 꿈. 그러나 그녀의 거짓말로 인해 나는 두 개의 꿈을 모두 잃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고 좌절은 배가 되었다.
그러나 그 때부터 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그 때의 괴로운 상황을 이겨내고, 내 자신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책망해야만 했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을 탓 해야만 하는 건, 어린 나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두 개의 꿈 중 하나를 이루고도, 습관처럼 그녀를 미워하고 경계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어리지 않아도 나는 그녀를 미워했다. 아무리 그녀가 신경이 쓰여도,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잡고선 자꾸만 내 감정을 찔러댄다는 걸 알면서도, 그 감정을 따라가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것은 내게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지푸라기 같은 것이었다. 언제라도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 같은 것이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변명이자 당위성이었다
‘그 때, 그거... 진짜 3번이었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거 아니라구요.’
그러나 그것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는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밥 먹었어요?”
내겐 더 이상 그녀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 언제든 원망하고 미워할 수 있었던 그녀를 더 이상 그러할 수 없다는, 준비도 되지 않은 사실이 나는 너무나도 어지러웠다. 혼란스러움 속에서 결국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하필 그녀가 있는 곳으로 떨어진다. 중력을 피할 수가 없다.
“......”
“......”
돌아본 그녀는, 큰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눈을 깜빡이지 않은 채 민준을 보며 그 짧은 말을 해석하려 하고 있었다. 둘 사이의 약간의 거리가, 더욱 더 안달이 나게 만든다. 쉼표 치곤 길었던 공백 후 돌아온 대답은.
“…아니요.”
하지만,
“근데 도민준씨하곤 안 먹을 거예요.”
너무나도 천송이다운 대답이라 곧바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티를 낼 수가 없어 잠깐 고개를 돌렸다. 표정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대답의 대답을 해주었다.
“알았어요.”
“그럼, 전 이만.”
“…네.”
송이는 퉁명스러운 인사와 함께 뒤돌아선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세 번의 걸음 만에 멈추고는 다시 홱, 민준을 돌아본다. 뭔가 그것도 천송이다워서 놀라진 않았던 것 같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왜 한 번 밖에 안 물어봐요?”
“……?”
그래도 예의상 두 세 번은 물어봐야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되물어본 송이는, 자기 목소리가 너무 컸던 걸 깨닫고 말꼬리를 흐린다. 본인도 민망하겠지만 아닌 척 꿋꿋이 버티고 있는 송이를 보며, 민준은 두 번째 새어나오는 작은 웃음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번에도 나를 붙잡는 그녀에게, 못 이긴 척 붙잡힌다.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많은 말들 중 하나를 꺼내며.
“…미안해서요.”
“……”
이건 비아냥대는 것도, 귀찮은 상황을 모면하려 하는 말도 아니었다. 아주 긴 세월들이 쌓이고 쌓여 만든 말. 송이도 이 말의 깊이를 아는 것처럼, 오랜 시간 동안 깊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 말하지 않아도 아는 입술, 천천히 숨을 내쉬는, 최소한의 행동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순간.
“오케이. 알았어요.“
“…내일 봐요.”
그 순간을 버틴 후, 그녀는 미련 없이 다시 돌아섰다. 그녀가 복도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조급한 건 없었다. 우리는 내일을 기약했으니까. 과거도, 오늘도 아닌, 내일.
#
민준은 송이를 보낸 후 잠시 집에 들렀다. 오늘도 병실에서 밤을 보내야했기 때문에 집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늦은 저녁을 먹은 후 병원으로 돌아왔다.
티비를 보며 민준을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는, 민준이 오자마자 송이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아가씨 민준이 너랑 동갑이지? 네. 그래도 선배니까 잘해주렴. 네, 그러려구요. 아이고 어쩜. 티비에서보다 훨씬 예쁘더라. 어쩜 그렇게 예쁘니, 말도 예쁘게 하고.
민준은 엄마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네. 예뻐요, 전부 다.”
#
다음 날 촬영. 모든 준비가 끝난 현장에 제일 늦게 나타난 송이의 걸음은 느긋했다. 송이가 먼저 기다리고 있던 민준의 앞에 서자 곧바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감독님의 디렉팅을 들으며 이번 씬의 분위기와 감정선을 이해하고 몇 번 대사를 맞춰보았다. 본 촬영 준비는 완료되었다.
“뭐하러 그랬어요.”
아주 잠깐의 틈을 타 송이가 말을 걸어온다. 인사도 없는 오늘의 첫 대화.
“아는데 모르는 척 할 순 없잖아요.”
“...참 나.”
송이는 지금 어젯밤, 두 사람이 헤어진 후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조금 늦은 밤, 어머니가 주무실 때 그녀의 동생이 입원해있다는 병실을 찾아간 일.
“아무튼… 윤재가 고맙다고 전해달래요.”
“그 게임기 갖고 싶으면 가지라고 해요. 난 요새 안 하니까.”
“에이, 안돼요. 그 자식 내년에 고3인데. 게임은 무슨. 근데 대체 어제 몇 시까지 게임하면서 논 거예요?”
글쎄- 하고 어깨를 으쓱. 송이는 마음에 안 든다는 말투이긴 했지만 입가엔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게 우리에겐 아주 오랜만의 대화 같은 대화라는 걸 안다. 그래서 그녀도 웃고 있는 것이란 것도. 네가 말을 하면, 내가 대답하고. 내가 말하면, 내가 대답하고. 그런 일상의 이야기.
“자자, 갑니다. 액션!”
몇 마디 나누지 않은 채 촬영이 시작되었다. 언제 떠들고 이야기했냐는 듯, 곧바로 극에 집중한다.
드라마 ‘여행’ 8화 씬 넘버 16,
“진짜 이제 나 좀 그만 괴롭혀요.”
“내가 언제 괴롭혔다고!”
“바로 지금이요. 대체 왜 이래요? 나한테.”
“좋아하니까 그렇지.”
“...뭐, 뭘요?”
“...당신.”
“......”
“좋아해, 천송이.”
혹은, 지금의 너와 나, 이 순간.
컷! NG! 하하하. 얼마 전 그랬던 것처럼 촬영장에 또다시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뭐야, 둘이 짰어? 도민준씨도 거기서 본명이 왜 나와. 아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제 잠을 좀 못 잤더니, 하하.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내가 인정하고 있었단 사실을 인정했다. 이제야, 어지럽지 않은 것 같다.
민준의 마음.
그러고보니 17화나 되어서야...!
오늘 진짜 춥다 얼어죽을 뻔 ㅎㄷㄷㄷ 먼지들 건강관리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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