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남자와 별인 여자
# 청춘기(靑春記) 12 본문
청춘기(靑春記)
- Youthology
# 12
# BANFF, ALBERTA, CANADA
캐나다에 온지 닷새째, 그리고 밴프 첫째 날.
밴프는 재스퍼보다 훨씬 사람도 많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전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친근한 분위기의 아담한 마을을, 마치 이곳에 살고 있는 것처럼 꽉 채우고 있었다. 어딜가도 배경 그림처럼 서 있는 꼭대기가 하얀 푸른 산은, 몇 시간을 달려왔음에도 어쨌든 같은 'Rocky' 라는 이름으로 묶인 곳이구나를 실감케 했다.
버스를 타고 정오 무렵 밴프에 도착한 송이는, 제일 먼저 점심을 먹을 곳으로 찾으러 갔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엄청나게 매장이 많다는, 정말 아메리칸스러운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어제의 만찬 덕택에 메뉴 선택에 대해 아쉬운 건 없었다. 예상 못한 지출에 돈을 좀 아껴야 하기도 했고. 무난한 세트 메뉴를 하나 시켜 수북이 쌓인 감자튀김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먹었다. 그러고 나서 너무 배가 불러 한동안 의자에 기대 창 밖을 보며 앉아있었다.
“…어딜 먼저 가지.”
이제 가야지, 하다가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물론 몇 날 며칠 동안 열심히 계획한 완벽한 스케줄표가 있었지만, 혼자 오기로 결심한 후로는 그대로 따를 수가 없었다. 그 계획대로 하면, 또다시 어디에선가는 민준과 마주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렵사리 ‘혼자’ 여행하겠다고 말한 다짐이 무색해져 버리니까.
송이는 근처 관광 안내 센터에 들러 밴프 지도를 집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입구 근처 벤치에 자리를 하나 잡고 앉아 어떻게 해야 계획을 잘 바꿀까, 고민했다. 머리가 복잡해 일단은 숙소를 구하기로 했다. 먼저 이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싶었다. 마침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길래 잘 보지도 않았던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을 켜고 와이파이에 접속하니 밀려있던 알람들이 정신 없이 쏟아진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엄마, 나는 재스퍼에서 3시간 정도 걸리는 밴프라는 곳에 왔어. 잘 있으니 걱정 마.
“……”
지도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타운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았다. 그 때 즈음, 그를 생각했다. 어느 도로가에 차를 세워놓고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많은 사람들 틈에서 걷고 있을 것 같은, 혹은 저기 보이는 마트에서 장 본 걸 가지고 나올 것만 같은… 그런 생각. 무의미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핸드폰 속 대화에 민준은 없다. 2년 전 바꾼 전화 번호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 때 연락처를 모두 날리면서 민준의 연락처도 사라졌다. 만약 번호가 있었다면 연락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송이는 스스로를 비난하며 숙소를 알아보려 숙박 어플을 켰다.
“왜 이렇게 비싸…”
지역을 밴프로 설정하고 낮은 가격순으로 숙소를 검색하니 시작 가격부터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높았다. 캠핑을 즐겨 하는 사촌 오빠를 졸라 텐트도 빌려 왔는데 그냥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잘까 했지만, 막상 혼자 밖에서 잘 걸 상상하니 겁이 나기도 했다. 캠핑장에 야생 곰도 나타난다던데 말이지. 캠핑은 좀 더 고민해보기로 하고 지역을 좀 더 넓혀 찾아보았다. 밴프에서 25km 정도 떨어져 있는 캔모어(Canmore)라는 마을에는 숙소가 저렴했다. 어차피 캔모어에 맛있는 베이글 가게 있다고 해 시간이 되면 가보려고 했었다. 숙소도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은데다가 예산도 약간 초과했지만 일단은 그냥 가기로 했다.
송이는 다시 관광 안내 센터로 들어가 캔모어로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탈 수 있냐 물어보고는 버스를 타러 갔다. 30분에 1대 있는 시내버스를 타고 캔모어로 향했다. 길은 넓고 곧게 이어져 있어 캔모어에 금방 도착했다.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남의 집이긴 했지만 방은 혼자 썼었는데, 이 호스텔은 8인실 짜리다. 그것도 남녀 구분 없는. 여행 오기 전 이런 숙소들에 대한 후기를 많이 보고 왔었는데, 최악이라는 사람도 있고 나쁘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결론은 그냥 운이었다. 한창 밖에서 놀 시간이라 그런가 방엔 아무도 없었다. 5개의 침대에 짐이 놓여져 있었는데 소지품과 가방의 상태로 봐선 다 남자인 것 같다. 잠만 자면 되지 뭐. 송이는 잠깐 쉬고 싶어서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밴프에서도 숙소 안 구했어?’
‘응, 그냥 내키는 대로 하려고. 넌, 호스텔 지내보니 어땠어? 호스텔 알아볼까 하는데.’
‘호스텔? 여긴 다 남녀 구분 없어.’
‘알아. 그니까 어땠냐고. 안 불편했어?’
‘당연히 불편하지. 그런데는 안 가는 게 나아.’
호스텔 혼성룸 얘길 했더니 다짜고짜 안 좋다고 하던 민준이 떠올랐다. 남자들이 다 벗고 다닌다니 어쩌니, 라면서 귀는 왜 빨개지는지. 와, 그럼 완전 좋은 거 아니야? 하고 일부러 한 술 더 떠보니 그럼 마음대로 하라며 고개를 돌리던 민준. 송이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픽 웃었다. 얼마나 대단한 서양 놈이 다 벗고 돌아다니는지 한 번 보자.
잠깐 눈을 붙였다가 잠이 들 무렵,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와서 놀라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 방을 쓰는 2명의 또래 여자였다. 송이가 어색하게 Hi- 라고 인사를 하자 그들도 반갑게 받아준다.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그로부터 짧은 대화를 나눴다. 둘은 프랑스 대학생이고, 친구 사이며, 방학이라 놀러왔다고 했다. 송이는 자기도 그렇다고 했고, 혼자 왔다고 하니 그들이 Cool 이라며 엄지를 척 내민다. 그렇게 짧은 이야길 나누고 둘은 짐을 정리하기 하길래 송이는 다시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저녁에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숙소를 나왔다. 휴- 이 영어 울렁증. 나중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말을 안 걸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송이는 다시 버스를 타고 밴프 시내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가보기로 한 곳은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이었다. 지어진 지 무려 130년이나 된 호텔은 멀리서 봐도 마치 거대한 성처럼 멀리서도 눈에 띈다. 비록 비싸서 하루조차도 묵을 수 없는 곳이지만 대부분의 밴프 관광객들이 구경 삼아 들르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린 다운타운 중심에서, 밴프를 가로지르는 보우(Bow)강 쪽으로 걸어갔다. 무거운 배낭이 없으니 이렇게 발걸음이 가벼울 수가 없다. 이정표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가다가 Bow Falls 라고 폭포가 있다길래 즉흥적으로 중간 행선지로 정하고 그 곳에 들렀다. 폭포라고 해서 뭔가 거센 물줄기를 상상했었는데, 그냥 보통의 강물이 조금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뿐이었다. 에이, 이게 뭐야. 조금 실망할 뻔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부정적 감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시원한 물 소리를 듣다가 다시 페어몬트 호텔로 향했다. 역시 호텔은 사진에서 봤던 대로 거대한 성 같았다. 눈치를 보며 로비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구경했다. 인테리어와 장식이 오래된 느낌이긴 했지만, 좋게 말하면 클래식하고 독특했다. 로비에서 호텔 안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반대편 문으로 나가니 테라스 카페가 나왔다.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길래, 그래, 이 호텔에서 잠은 못 자더라도 커피 한 잔은 마시자, 하고 결심했다. 하지만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가격을 보고 놀라서 그냥 그대로 나왔다. 커피가 뭐 이렇게 비싸- 투덜대며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는 호텔 구경을 마쳤다.
송이는 다시 30분 가량을 걸어 밴프 시내 쪽으로 와 아까 가보지 못한 곳들을 돌아다녔다. 관광 안내판을 보며 끝없이 이어진 산들의 이름을 맞춰보기도 하고, 내일 가볼까 하는 설퍼산 곤돌라를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사실 여행을 통해 정말로 하고 싶은 게 이런 것이었다. 큰 의미 없이, 큰 생각도 없이,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 것. 그렇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은 어쩔 수 없이 아깝다. 송이는 보우강을 건너는 작은 다리 위에 가만히 서 있다가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만 3번을 받았다. 그 중 한 명은 저처럼 혼자인 듯한 한국인이었는데, 찍어줘서 고맙다며 자신도 송이를 찍어주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되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어 그냥 핸드폰을 건네고 사진을 찍혀(?)주었다. 엊그제 호수에서 민준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던 게 떠올랐다. 이왕이면 같이 찍을 걸 그랬나…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 CANMORE, ALBERTA, CANADA
저녁은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밴프 다운타운은 식당마다 물가가 꽤나 높은 편이었다. 돈 때문에 구질구질해지긴 싫었지만, 어차피 마음에 드는 메뉴도 없었다. 캔모어 버스 정류장 근처에 봤던 작은 가게에서 타코를 하나 사오고, 주류샵에서 맥주도 사왔다. 비싼 호텔 커피를 마시는 건 꽤 망설여지는 일이지만, 술을 사는 데엔 거리낌이 없다. 호스텔 입구에 휴식 공간이 넓게 있어 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옆엔 이미 술판을 벌이고 있는 무리도 있었다.
의자에 편히 기대 앉아 여유롭게 맥주를 마셨다. 안주로 먹기에 타코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끼며, 오늘 하루와 내일의 계획을 정리했다. 예산과 지출 내역을 써 둔 수첩을 꺼내 오늘 쓴 돈을 확인하고 있을 때, ‘안녕하세요.’ 라는 익숙한 인사말이 들렸다.
“……?”
“아까 밴프에서 사진 찍어주신 분, 맞죠?”
“아……”
보우강 다리 위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줬던 남자다. 우연은 꼭 그 사람하고만 생기는 건 아니다. 그래서 특별하게 여길 필요가 없는 거다.
“여기 호스텔에 묵으세요?”
“네.”
“와, 저돈데.”
하나도 안 신기한데, 그 사람은 신기하네요- 라고 말하고는 송이의 맥주를 보며 묻는다.
“근처에 리쿼샵 있어요? 못 봤는데.”
“네, 저기 버스 정류장 근처에.”
남자는 감사합니다, 하고는 송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다시 가버린다. 저보다 어린 것 같은데. 많아 봤자 22살? 거기까지만 궁금해하고 맥주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남자애가 금세 다시 앞에 나타났다. 이번엔 ‘같이 마셔도 되죠?’라면서. 대답하기도 전에 자리에 앉으며 이미 맥주 캔을 따고 있었지만. 어차피 제가 전세 낸 자리도 아니라 그러라고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 지 얼마나 되셨어요?”
“5일인가 6일 째인가… 밴프는 오늘 왔어요.”
“그래요? 저도 어제 밤에 캘거리에서 왔어요. 그 전엔 어디에 계셨는데요?”
“재스퍼요.”
“와, 저도 며칠 후에 갈 건데. 어디가 좋았어요?”
“그냥… 다 좋았어요.”
송이는 이어지는 질문에도 꼬박꼬박 대답해주었다. 맥주를 마시고 내려놓았는데 빈 캔인 게 티가 났는지 남자가 비닐봉투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서 내민다. 드세요. 괜찮아요. 딱 봐도 부족해 보이더라구요. 괜찮은데… 송이는 난감함을 표하며 이미 코 앞에 놓여진 맥주를 바라보았다.
“거기 가보셨어요? 그 뭐더라, 말…”
“말린 호수요.”
“아! 맞다. 말린. 거기 엄청 크다던데.”
“네. 엄청 넓어요.”
“저 거기서 그 노 젓는 배 타보려는데.”
“타지 마세요. 그거 엄청 힘들어요.”
카약 얘기가 나오자마자 그 때의 기억에 눈썹을 구겼다. 그 때 고생한 팔이 아직도 아픈 것 같은데.
“와, 타보셨나 보네요. 혼자?”
“……네.”
말 끝마다 뭘 그리 물어보는지. 그냥 거짓말로 답했다. 누군가와 함께 탔다고 하면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설명하기에 벅찰 게 뻔하니까. 여길 원래 전 남자친구랑 오려고 했는데 헤어졌다. 근데 전 남친이 취소한 기차 티켓을 3년도 더 전에 연락이 끊긴 대학교 친구가 샀다. 밴쿠버에서 재스퍼로 같이 왔고, 여기저기를 같이 다니고… 뭐 그런 기나긴 이야기 말이다.
남자는, 재밌을 것 같은데 왜 힘드냐, 그럼 다른 데는 어디 가봤냐… 취조하듯이 계속 질문을 던져댔다. 송이는 마시지 않으려 했던 맥주의 뚜껑을 따 마시면서 재스퍼의 이야기는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특히, 아네뜨 호수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불과 하루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득해져버린 그 기억을, 굳이 낯선 이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대화의 주제를 바꿔 어디에 사냐, 몇 살이냐, 대학생이냐, 그런 얘길 주고 받았다. 21살, 송이의 본가와 같은 지역의 지방 국립대 체육교육학과 2학년. 군대 가기 전, 알바비 반, 부모님 졸라서 반 그렇게 온 여행. 25살, 서울서 대학 다니고, 이번 여름에 졸업하고, 직딩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온 여행. 송이는 술이 좀 들어다자 자신의 신상 정보도 술술 말해주기 시작했다. 취업 축하한다, 군대 가는 거 축하(?)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몇 번 건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두워져 있었다. 해가 졌다는 건 이미 늦은 시간이라는 거다.
“이제 들어가야겠어요.”
“벌써요? 시간 아깝게.”
“오늘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서 피곤하기도 하고. 내일도 일찍 일어나려면.”
“음… 저도 그렇긴 해요.”
“맥주 잘 마셨어요. 첫날인데 시차 적응 잘 하구요.”
송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하자 남자도 따라 일어나더니 한 마디를 더 한다.
“근데, 내일은 어디 가세요?”
“…왜요?”
“아니, 그냥, 뭐… 참고 하려구요.”
“……”
분명, 21살 이 남자는 처음 저를 발견하고 맞은 편에 앉을 때부터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좀 많아요.’라는 눈이었다. 망설이지도 않고, 오히려 너무 가벼운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쉽게 다가오는 호의. 그게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쉬울 수도 있는 마음을, 어렵고 또 어렵게 돌고 돌았던, 또 다른 21살의 어느 누군가가 떠오를 뿐이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가고 싶은 곳은 있는데, 갈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남자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오늘 말 동무 해줘서 고마워요, 잘 자요- 하고 인사를 한다. 송이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호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함께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함께 갈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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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실 호스텔 룸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8명 중 5명이 남자였는데, 전부 중국인이었다. 둘, 셋씩 일행인 듯 했으나 여기 와서 친해진 건지 방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조용히 해달라고 몇 번 말했지만, 그 때뿐이었지 그들은 새벽까지 태블릿 PC로 게임을 하고 술을 마셨다. 낮에 만난 2명의 프랑스 여자애들은 술에 떡이 되어 들어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으니, 잠을 못 자고 괴로운 건 송이 저 혼자였다. 차라리 저도 술에 취해서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였다. 결국 새벽 3시가 넘어 다섯의 그들마저 곯아떨어지고 나서야 송이도 잘 수가 있었다. 그러나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이른 아침, 그 프랑스 애들이 일찍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며 술에도 덜 깬 채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바람에 송이는 또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송이는 잔뜩 짜증이 나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하루 정도 자보고 더 묵을지 결정하려고 했는데, 바로 아웃이다. 방을 바꾼다고 해도 사정이 그리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이런 곳은 제 체질이 아니구나, 결정 내리고는 어차피 일찍 깬 김에 오늘 하루도 이르게 시작하기로 했다. 씻고 짐을 챙겨, 널브러진 하룻밤 룸메이트들을 뒤로 한 채 미련 없이 방을 나왔다.
그 와중에 아침은 먹어야겠다 싶어 식당으로 갔다. 잠을 못 자 입맛이 없었지만, 조식이 숙박비에 포함이니 먹어야 했다. 대충 시리얼과 과일 몇 개를 먹고는, 돈이 아까운 것 같아 풋사과 1개와 낱개로 포장된 크림치즈와 잼을 몇 개 챙겼다.
“굿모닝.”
때마침, 식당 앞에서 저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어제의 그 21살짜리 남자애가 송이의 테이블에 앉는다.
“어? 오늘 체크아웃 하시나 봐요.”
“네. 잠자리가 별로라서.”
“그래요? 전 되게 좋던데.”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 그럼 전 이만-하고 일어나려는데, 남자가 또 따라 일어나며 붙잡는다.
“같이 가요.”
“네?”
“저도 어차피 나가는 길인데, 같이 가자구요.”
“제가 어디 가는 줄 알고?”
“그냥 따라 가려구요. 그래도 되죠?”
# BANFF, ALBERTA, CANADA
호스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배낭을 맡기고 밴프로 왔다. 내키지 않는 꼬리를 달고 왔지만, 의외로 귀찮게 굴지 않았다. 이따금 뭘 묻거나 감상을 얘기할 뿐. 엄청 들이댈 거라고 예상했던 건, 정말 혼자만의 과장된 생각이었다.
4살 어린 대학생 남자애-이름은 태경이다-와 밴프로 와 들른 곳은 설퍼(Sulphur)산으로 올라가는 곤돌라는 타는 곳이었다. 이른 시간인 줄 알았는데, 산 입구에는 관광객들로 매우 북적거렸다. 차로 가득한 주차장을 지나면서, 태경은 오늘 안에는 갈 수 있는 거냐며 걱정을 했다. 매표소에도, 탑승장에도 줄이 엄청 길었다.
“저기 가서 줄 서 있어요. 내가 표 사올 테니.”
“그럴까요. 42달러라 그랬죠? 그럼 표 사고 저 쪽으로 오세요.”
뒤에도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어 송이는 일단 줄부터 서야 될 것 같아 태경을 얼른 탑승장 쪽으로 먼저 보냈다. 태경은 꼬깃꼬깃한 10달러짜리 4장과 5달러 1장을 송이에게 건네고 재빨리 반대편으로 뛰어간다. 내가 이거 들고 튀면 어쩌려고 덥썩 주고 간대. 송이는 돈을 받고도 이상하다 여기며 매표소로 가 줄을 섰다.
“구름이 많네.”
기다리면서 곤돌라가 올라가고 있는 산 쪽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에 온 이후로 가장 날씨가 안 좋다. 구름이 산 중턱까지 낮게 깔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곤돌라들이 구름 사이, 어떤 다른 세계로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산 위에서 밴프의 전경을 훤히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이런 신비한 광경 속에 있는 것도 괜찮은 경험일 지도 모른다.
“……”
10분을 넘게 지루하게 혼자 서 있었다. 멍하니 앞 사람만 따라 한 발짝씩 앞으로 가다, 뒷 사람이 어깨를 톡톡 쳐 제 차례가 온 걸 알았다. 송이는 빈 창구로 가 주머니에 넣어둔 태경의 돈을 꺼냈다. 정신을 얻다 둔 건지, 제 몫은 꺼내지도 않았다. 송이는 급히 가방에서 지갑을 찾았다.
“How many tickets do you need?”
“……”
“Ma’am, how many tickets?”
캐나다 달러 몇 장을 꺼내려다 말고, 다시 지갑을 닫았다. 문득… 홀린 듯이 직원의 물음에 대답했다.
“One ticket, please.”
# MINNEWANKA LAKE, BANFF
Water of the spirits. 캐나다 원주민 언어로 영혼의 물이라는 뜻의 미네완카(Minnewanka) 호수. 그 이름처럼 맑고 깨끗한 물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송이는 결국 설퍼산에 오르지 않고 이곳으로 왔다. 혼자서.
‘왔어요? 오래 걸렸네요.’
‘미안해요. 곤돌라는 혼자 타요.’
‘네?’
‘나는 그냥 혼자 다른 데 갈게요.’
‘…제가 불편해서 그러세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그럼 같이 안 타도 돼요, 따로 타도 되는데.’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가보고 싶은 데가 있어서 그래요.’
‘굳이 지금요?’
‘…네, 지금.’
태경에게 표와 함께 잔돈 3달러를 돌려 주고 그 곳을 나왔다. 태경은 자기가 부담스럽고 싫은 거면 안 따라다니겠다고 했지만, 송이는 괜찮다고, 이건 너의 문제가 아니고 나의 문제라고 말해주었다. 이곳, 미네완카에 오면, 도민준이 있을 거라 믿는 나의 문제.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미네완카 호수 근처를 둘러보는 걸로 되어 있었다. 도민준이 가지고 있을 스케줄도 마찬가지이고. 점심 시간이 다 된 지금, 그가 이미 오전에 다녀갔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곳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날씨가 좀 좋아졌네.”
송이는 주차장에 빌린 자전거를 대놓고 미네완카 입구에서부터 안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여기까지 와 놓고선 억지로 정당성을 부여한다. 설퍼산은 날씨가 안 좋아서 위에 올라가봤자 아무 것도 안 보일 거야. 풍경은 다른 데에 가서 봐도 돼. 또 걔랑 다니면 귀찮을 게 뻔하잖아. 걔를 더 만나기라도 할거야? 곧 군대 간다는데, 뭘. 4살이나 어리잖아. 천송이 넌 혼자 여행하고 싶어 했던 거 아니야? 게다가 이 쪽이 날씨도 더 좋고, 훨씬 낫네 – 그렇게 스스로 세뇌하면서도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단 번에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느낌으로.
그러나 미네완카 어디에서도 그런 이상한 느낌은 실현되지 않았다. 호숫가의 울퉁불퉁한 바위 끝에 앉아 있어도, 사람들이 먹고, 쉬고, 놀고 있는 피크닉 테이블 앞을 서성여도, 산책 코스를 따라 길을 걸어도, 없었다. 애초에 단번에 만나게 될 거란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실망감이 들었다. 그건 이렇게 행동하는 제 자신에 대한 감정이었다. 대체 뭘 바라는지, 뭘 기대하는 건지, 혹은 뭘 망설이는 건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 말이다. 그 때와 다를 게 없다. 여전히 21살이다. 태경처럼 솔직하기라도 하면 좋지.
“하아… 뭐하는 거냐.”
# TWO JACK LAKE, BANFF
송이는 미네완카에서 한숨만 쉬면서 1시간 정도 있다가 자리를 옮겼다. 미네완카 호수와 끝이 연결된 투잭(Two Jack) 호수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자갈밭과 바위로 이루어진 미네완카와는 달리, 투잭은 잔디밭이어서 사람들이 좀 더 쉬다가 가는 분위기였다. 바비큐를 하는 가족도 있었고, 요트를 타는 어린 애들도 있고, 아네뜨의 풍경과 비슷했지만 조금 더 활기차달까.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오른쪽에 아주 커다란 나무 아래 명당인 듯 보이는 벤치는 이미 어떤 대가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송이는 빈 피크닉 테이블을 찾아가 앉았다. 혹시나 민준을 만나게 될까하는 기대로 인한 초조함은 아까보단 줄어들었다. 그런 건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는 것 밖엔 안 되기 때문에.
“……”
송이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했다. 이곳에 있지 않으려 했던 이유, 그러나 결국 이곳에 있게 된 이유에 대해. 하지만 생각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4년 반 전, 신입생 때 학교 운동장에 마주쳤던 순간까지 가야 할 것 같아서 두려워졌다. 그 시작마저 후회하고 싶지 않아, 이유를 찾는 건 그만 두기로 했다.
아침에 짙게 깔렸던 구름들은 이제 다 걷히고 없었다. 이런 저런 복잡한 머리 속을 비우고 캔모어에서 나오는 길에 사왔던 베이글을 꺼냈다. 아까 베이글을 사면서 훈제 연어와 베이컨 중 고민하고 있으니 태경이 둘 다 사서 반 씩 나눠 먹자 해서 그러기로 했는데, 연어가 들어간 베이글은 이제 못 먹게 되었다. 메이플 시럽의 맛과 향이 은은하게 배어나는 빵은 굉장히 맛있었다. 베이컨과 달걀의 조합도 최고였다. 캐나다 와서 먹은 것 중 두 번째로 맛있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하고 먹으면 더 좋을 것 같았지만, 편의점에서 산 저렴한 라떼 음료로 만족한다.
송이는 밴프를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더 이 베이글을 사먹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오늘은 캠핑에 도전해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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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바로 근처에 캠프 그라운드가 있었다. 워낙 성수기라 자리가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구역에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비어 있었다. 캠프장은 사용료를 셀프로 낸다. 봉투에 얼만큼 묵을 것인지 표시하고, 돈을 넣고 밀봉한 후 정해진 곳에 넣어두기만 하면 되는,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송이는 영어로 된 안내 표지판을 몇 번이나 자세히 읽은 후에 돈을 지불하고, 오늘 하루 묵을 자리로 갔다. 백팩커를 위한 1인용 텐트는 집에서 여러 번 연습을 해봐서 별 무리 없이 설치할 수 있었다. 짐만 될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한 번은 쓰고 간다.
옆 텐트와의 거리도 꽤 멀어서 거의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송이는 신발을 벗고 텐트 안에 들어가 몸 하나 들어갈 수 있는 침낭과 담요를 꺼내 바닥에 깔았다.
“아, 좋다.”
드디어 시원한 바닥에 누워본다. 오버 좀 보태자면 이제야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기분이랄까. 그렇게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잠이 들었다. 떠드는 중국 애도, 부스럭거리며 돌아다니는 프랑스 애도 없고, 코를 찌르는 술 냄새도 안 나고, 귀찮게 뭘 물어보는 애도 없는, 오직 혼자만 있는 공간. 그것도 이런 자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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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는 두어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중요한 것만 챙겨서 필요한 것들을 사러 갔다. 자전거를 타고 다시 밴프 시내로 돌아가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고기를 구워먹을까, 했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그건 못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캠핑 장비를 파는 곳에 가서 바닥에 깔 수 있는 매트를 샀다. 아무리 침낭이 있어도 흙바닥에 등이 배겨 조금 불편했다. 자전거를 타도 꽤 되는 거리를 되돌아가는 길도, 마치 집으로 가는 것처럼 즐거웠다.
저녁엔 텐트 옆 피크닉 테이블에서 마트에서 사온 그릴 치킨 반마리를 맥주와 함께 천천히 다 먹었다. 그리고는 해가 질 때까지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있기도 하고, 캠프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옆 자리 가족이 요리한 음식도 얻어먹고, 로키에서 제일 많이 본 동물인 다람쥐 굴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어두워진 후엔 텐트 안에서 음악을 좀 듣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엔 좀 쌀쌀해서 있는 겉옷은 다 껴입고 침낭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잤다.
그날의 꿈에선, 투잭 호수의 커다란 나무 아래 벤치에 민준과 함께 나란히 앉아있었다. 처음 기차를 타고 오던 날의 꿈 속의 차가운 민준 대신, 다정하고 평온한 모습만이 존재했다. 왜 3년동안 연락 한 번 없었냐는 질문 따윈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곳에서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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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송이는 거의 하루 종일 그 곳에 있었다. 이런 날을 꿈꾸며 챙겨왔던 책을 읽었다. 자기 계발서도, 누군가의 성공담도, 복잡한 내용도 아닌 평범한 로맨스 소설이었다. 중간 중간 캠프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니는 10살짜리 미국 꼬마 애랑 같이 놀기도 하고, 낮잠도 자고, 차가운 호수 물에 발도 담가 보기도 했다. 어제 사왔던 체리도 야금 야금 다 먹어버렸다. 오후 시간 즈음에 그 책을 다 읽었다. 좋은 구절을 읽고 또 읽었다. 마음 같아선 여기서 하루 더 밤을 보내고 싶었지만, 샤워시설이 없어 씻지 못한 게 좀 그랬다. 밤에 춥기도 해서, 아쉽지만 캠프 그라운드를 나와 다시 숙소를 구하러 가기로 했다.
하루 숙박비를 절약했으니 혼자 잘 수 있는 곳으로 알아보았다. 캔모어에 있는 큰 인(Inn)에서 그나마 저렴한 방을 하나 예약해 밴프에서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밤을 보냈다.
# TUNNEL MOUNTAIN, BANFF
밴프에서는 오늘까지만 있고, 다시 재스퍼로 돌아갈 날까지 천천히 며칠에 걸쳐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밴프 보다 살짝 위쪽의 유명 지역인 레이크 루이스(Lake Loise)를 지나 아이스필드 파크웨이(Icefield Parkway)를 따라 가다보면 재스퍼에 도착하게 된다.
밴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르기로 한 곳은 터널(Tunnel)산이었다. 밴프 한 가운데 있는 터널산은, 트래킹 초보자에게 적당할 만큼 낮은 산이다. 그리고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밴프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제 설퍼산 곤돌라를 타지 않았으니 터널산만은 꼭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도를 보아도 산을 오르는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아 몇 번을 물어 물어 갔다. 4-50분이면 정상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길이 산을 빙 둘러 지그재그로 나 있어 큰 무리는 없이 갈만 했다. 하지만 30분 정도 지나니 점점 체력이 딸렸다. 그리 멀지 않다는 말만 믿었더니 더더욱 정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슬슬 땀이 흐를 때쯤 바람이 부는 곳에서 쉬어 갔다.
낮게 설치된 펜스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산 뒤 쪽으로 샛초록의 나무들이 빽빽한 숲들 사이를 흐르는 보우강이 보였다. 산 꼭대기에서 밴프를 내려다보는 것만 상상했었는데, 휴식 중 발견한 뜻밖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아까 거의 뛰다시피 자신을 역전해간 건장한 청년이 다시 되돌아오는 걸로 봐선 정상이 얼마 안 남은 듯 했다. 송이는 정상에서의 또 다른 풍경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 다 왔다!”
힘을 내서 조금 더 올라가 그리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 산의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 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송이도 숨을 고르며 모든 시선들이 향한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한 눈에 들어오는 밴프의 전경. 왼쪽엔 사흘 전 가본 페어몬트 호텔이 보였다. 산에 둘러싸여 있어 더욱 더 신비로운 성 같았다. 그 옆으로는 에메랄드 빛깔의 보우 강이 흐르고, 오밀조밀 건물들이 모여 있는 시내도 보였다.
“안 왔으면 후회할 뻔 했네.”
때마침, 저 아래에서 기차의 경적 소리가 들린다. 빠앙- 북쪽에서 화물 열차가 오고 있었다. 덜컹 덜컹, 기찻길을 달리는 소리가 하늘 가득 울려 퍼진다. 끝도 없이 연결된 형형색색의 화물 컨테이너 박스들. 이 넓은 대륙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는 걸까. 송이는 장난감처럼 보이는 기차를 내려다보며, 이 산에 오르길 참 잘 했다고 생각했다. 산에 오르고 이런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 계획할 땐 내키지 않았던 일정이었지만.
물론 이 산에 오지 않았다면, 이 모습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후회할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냥 그대로 평생 모른 채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온 이상, 알아버렸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감사한지.
“……”
바람이 불어왔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기차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귓가에서 그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 즈음 눈을 떴다.
“…드디어 찾았네.”
“……?”
“…천송이.”
하지만 이곳에 온 이상,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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