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남자와 별인 여자
# 청춘기(靑春記) 19-1 본문
청춘기(靑春記)
- Youthology
# 19-1
# M LODGE, GOLDEN, BRITISH COLUMBIA
왈- 강아지가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제 밤, 체크인을 할 때 계속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황금색의 리트리버 한 마리가 떠올랐다. 이름이 찰리라고 했던가. 왈왈- 로지 앞마당에서 찰리가 짖는 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미 밖은 밝았고, 약을 먹고 푹 잔 덕분인지 몸은 한결 가벼웠다.
송이는 기지개를 키며 앞마당이 보이는 테라스 쪽으로 다가갔다. 햇살이 반쯤 비치는 하얀색 커튼을 걷어내고 문을 열었다. 아직 덜 떠진 눈으로 비가 지나가 아주 깨끗한 하늘과 푸른 잔디가 넓게 펼쳐진 마당을 보았다.
“……”
그리고 그 마당 한 가운데에는 민준이 있었다. 그의 맞은 편엔 찰리가 연신 꼬리를 흔들어대며 민준의 손에 쥐어진 공을 탐내고 있었다. 어서 던져달라고 조르며 왈, 한 번 짖자 민준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며 쉿, 조용히 하라니까, 부탁하고 있었다. 그걸 찰리가 알아들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슬며시 웃던 송이의 머리 속에, 불현듯 어제 새벽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같이 잘래?’
아. 내가 왜 그랬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지. 도민준이 뭐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나는 진짜 그런 의도(?)가 아니고 원래 이 방에서 자야 할 민준이 밖에서 불편하게 자고 있는 게 미안해서. 근데 괜찮다고 고집 부릴게 뻔하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그런 거지. 또 내가 자다가 일어난 거였고, 감기약 때문에 정신이 없게 비몽사몽한 상태의 뭐 그런…
“아아…”
상쾌한 아침을 뒤덮는 창피함에 송이는 스스로를 잘 설득했다. 별 거 아니야. 그냥 밤 중에 헛소리한 거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내, 자신의 볼을 감싸던 큰 손의 감촉이 느껴져 얼굴에 확 열이 올랐다. 양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일어났어?”
“…어? 어.”
거기에 민준의 목소리까지 더해지니, 손 끝까지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테라스에 나와 있는 송이를 발견한 민준이 아침 인사를 건네고는 손에 가지고 있던 공을 저 멀리 던져버린다. 그러자 찰리가 신나게 달려간다. 송이는 급히 손을 내리고는 이 쪽으로 다가오는 민준에게 굿모닝, 어설프게 인사를 했다.
“몸은 어때? 괜찮아?”
“응, 괜찮아. 약 먹어서 그런지.”
“다행이네. 아침 먹으러 가자.”
테라스가 약간 높은 위치에 있어 민준이 밑에서 살짝 올려다보며 안부를 묻는다. 괜찮다고 하니 싱긋 웃은 민준이 현관 쪽으로 들어간다. 찰리는 멀리서 공을 물고 돌아와 쫄래쫄래 민준을 쫓아간다.
송이는 얼른 다시 방으로 들어와 세수를 하고 머리를 정리했다. 이미 민낯은 몇 번이나 보여줬는데, 매번 신경이 쓰인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빵과 커피 향이 가득했다. 공용 공간인 거실은 아침을 맞아 괜찮은 식당이 되어 있었다. 주방의 바엔 간단한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커피를 내리고 있는 주인이 굿모닝, 이라고 밝게 인사를 해 왔다. 송이도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하고 거실 가운데로 나왔다. 큰 식탁의 일부엔 다른 숙박객들이 몇 앉아있었고, 한 쪽에서 민준이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따로 식탁이 있는 게 아니라 다같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인지 좀 많이 어색했다. 그나마 민준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 원래 여기 혼자 있어야 할 사람은 민준이었지만.
“앉아있어. 갖다 줄게.”
송이가 옆 빈 자리에 앉자 민준이 음식을 가지러 가려 일어났다. 송이는 따라가려다 자리를 지켜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앉아있었다. 잠시 후, 민준이 왔다갔다하며 음식 이것 저것을 가져다 주었다. 새로 만든 따뜻한 머핀과 오믈렛, 시리얼, 갓 구운 식빵. 뭘 발라 먹겠냐 물어서 아무거나, 라고 답했더니 버터, 잼, 크림치즈, 있는 걸 다 가져왔다. 그릇들을 죄다 송이의 앞에 몰아 두고 스푼, 포크까지 챙겨주고는 뭐 마실래, 커피? 주스? 하고 또 묻는다. 약간은 부담스러워 하며 커피- 라고 작게 대답했다. 민준이 또 주방 쪽으로 가자 맞은 편에 앉아서 그 광경을 다 지켜보고 있던 중년 여성이 웃으며 말한다.
“He is so sweet.”(되게 다정하네요.)
“아… 하하.”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당황해서 대충 웃으며 얼버무렸다. 원래는 저렇지 않다, 쟤가 얼마나 쌀쌀 맞는지 모를 거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포크를 들고 먼저 먹을까, 고민하는 사이 아주머니가 또 묻는다. How long have you two been going out?(만난 지 얼마나 됐어요?) 송이는 두 번 당황해서 잠깐 말문이 막혔다. 주방 바 앞에서 커피를 기다리는 민준을 쳐다보았다. 대답하기는 당연히 어려웠다. 여기서 만난 지 열흘 정도 되었다고 말하면, 이상하게 보겠지. 송이는 눈 앞의 머핀을 집으며 말했다.
“About 4 years…” (4년 정도...)
“Oh, he’s very nice to you as ever.” (오, 여전히 잘해주네요.)
만난다는 말이 정말 ‘meet’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아주머니의 질문에 4년이 넘었다고 답했다.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자 그녀가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이스 하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한다.
걱정해주고, 기다려주고, 도와주고, 만나러 와 주고… 겉으로 크게 티를 낸 적은 없었지만, 넌 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내게 아주 친절하고, 다정했지. 지금도 그렇지만, 그 사이 우리의 공백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그 때 기회를 놓치지 않았더라도 넌 여전히 이런 모습일까.
Yes, he is ever the same- (네, 항상 한결 같아요.)
송이는 옅게 웃으며 말하고는, 커피를 두 잔 가지고 오는 민준을 맞이했다.
“고마워.”
그 해 그 여름에, 내가 다리를 다치지 않아 함께 남산에 갔더라면. 네가 날 찾아와 바다가 아닌 내가 보고 싶다고 말했더라면. 내가 너의 과거를 그저 과거로만 여겼더라면. 어차피 나도 너의 과거의 일부일 뿐인데. 그래도… 우린 이 자리에 이렇게 나란히 앉아있게 되었을까.
송이는 그 때보다 딱 4살만큼 더 나이를 먹은 것 말곤 변한 게 없는, 다만 그 때보다 조금 더 애쓰고 있는, 민준을 보며 웃었다.
#
딱히 정해진 스케줄이 없어 체크아웃 시간까지 느지막이 쉬다 나가기로 했다. 송이는 아침을 먹고 씻고, 젖어서 말려둔 짐들을 정리했다. 짐을 정리하고 난 후, 로지 앞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아직 잔디가 조금 젖어있다. 산 속 어느 공간에 오롯이 가두어진 느낌. 그 느낌을 만끽하라는 듯이 마당 한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보았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이 곳에 온 모든 사람들이 했을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황금색의 털이 긴 찰리가 공을 물고 옆에 와 있다. 꼬리를 살랑 살랑. 네가 좋아하는 게 이 공이구나? 하고 공을 휙 던져주었다.
몇 번 그렇게 놀아주고는, 야, 누나도 이제 힘들어- 마지막으로 공을 멀리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준은 뭐하고 있으려나, 안으로 들어가 민준을 찾았다. 거실에는 없어 방 쪽으로 가 조심히 문을 열었다. 도민준- 하고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여기도 없나 싶었지만, 문을 다 여니 침대 위의 민준이 보였다. 거기서도 불편하게 쪼그리고 자고 있는 민준. 역시 소파 위에선 편히 잤을 리가 없다. 아니면, 새벽의 괜한 말 때문에.
“……”
이불도 덮지 않고 그 위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민준을 보고 있는 기분이 이상했다. 여행이 점점 끝나가고 있다는 것. 왜 그 사실을 민준을 보면서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송이는 민준에게 다가가 이불 반을 접어 덮어주고, 머리 밑에 베개를 받쳐주고,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 쪽의 커튼도 닫아주었다. 어두워진 방 안에서, 잠든 민준을 내려다보며 그도 이렇게 자신을 보고 있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나였더라도, 분명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송이는 한참 동안 민준을 보다 방 밖으로 나왔다. 거실에 앉아서 사진도 보고 인터넷을 하며 밀린 뉴스도 챙겨보았다. 한국은 늦은 시간일 것 같았지만 엄마에게 연락도 했다.
엄마, 나 여기 너무 좋아. 돌아가기 싫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싫어. 돌아가면 왠지… 이 모든 게 전부 다 꿈일 것만 같아.
# ICEFIELD PARKWAY
또다시 길을 달렸다. 밴프에서 재스퍼까지 북서쪽으로 쭉 뻗은 300km 가량의 길, 아이스필드 파크웨이(Icefield Parkway)를 향해. Icefield 라는 이름은, 여름에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빙하 때문이다. 여행의 마지막으로 가는 길 위에서 이틀을 보내고, 다시 재스퍼로 돌아가 기차를 탈 준비를 할 것이다.
두 사람은 정오를 넘겨 여유롭게 남은 여정을 시작했다. 어제 갔었던 레이크 루이스로 되돌아가는 중, 근처 마트에 들렀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따라 올라가는 도중엔 사람이 사는 큰 마을이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송이가 카트에 뭘 이것저것 많이 고르길래 민준이 물었다.
“뭘 그렇게 많이 담아? 둘이 먹을 건데.”
“내가 먹을 거거든? 나 오늘 캠핑할거야.”
“뭐? 어제 그 고생을 하고 또 그러겠다고?”
불과 24시간도 안 된 일을 잊은 건지, 또 캠핑을 하겠다는 송이의 말에 민준이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민준이 뭐라고 할 것 같긴 했지만 송이는 이미 전부터 계획했던 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젖은 텐트도 다 말랐고, 하늘은 절대 비가 오지 않을 것처럼 구름 한 점 없었고, 혹시나를 대비해 자리를 비울 땐 텐트 입구를 꼭 닫고. 이런 것만 조심하면 캠핑을 못할 이유가 없었다.
“왜애. 오늘은 진짜 날씨도 좋은데. 만약 또 비 온다고 해도 어제 같은 상황은 아닐 거야.”
“학습 능력이 없네, 참.”
“가다가 중간에 내려줘. 여기서 좀만 가면 괜찮은 캠프 그라운드 있더라고.”
“야… 너는.”
“왜?”
“……아니다.”
민준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냥 포기하고선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리고 한숨. 같이 가자고 했고, 그러겠다고 답했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하룻밤도 같이 보냈다. 그러니 한 번 더 그 말을 하기엔 애매했을 민준의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모른 척 했다. 어찌 보면 먼저 선을 그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새벽 잠꼬대 같은 말을 또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그은.
송이는 민준을 두고 계속 마트를 둘러보았다. 오늘 내일은 뭘 먹지, 또 빵을 먹어야 하나. 지겨운데- 베이커리 코너 앞에서 고민하는 사이, 뒤에서 나타난 민준이 카트에 뭘 더 담는다. 조금 전 송이가 골랐던 것과 같은 생수, 포장된 샐러드, 빨간색 콜라 캔 한 개 더.
“…뭐야?”
“나도 갈 거야.”
“뭐?”
“나도 캠핑 할 거라고.”
“야, 도민준 너 텐트도 없잖아.”
“렌트하면 되지.”
“하……”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민준에, 송이는 기가 막혔다. 민준이 뭐 더 필요한 거 없냐고 물었지만 대꾸를 해 줄 생각도 나지 않았다. 뻔뻔함에 가까운 표정을 하고 있는 민준을, 인상을 구긴 채로 쳐다보았다.
“누구 있으면 신경 쓰여. 혼자인 게 편하단 말이야.”
“누가 같이 있재? 어차피 각자 다른 사이트에 있게 될 텐데.”
“…참 나.”
오지 말라고, 가라고 해도 어제처럼 바보같이 기다릴 지도 모른다. 뭐, 자기 말론 가다가 되돌아왔던 거라지만. 이번엔 송이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네가 좋다고 하니까,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마침 오늘 딱히 큰 계획도 없고.”
“……”
“진짜야.”
“누가 뭐래?”
궁금하지도, 믿지도 않는 변명을 하는 민준을 보고 어이없게 웃고는, 그럼 이거 네가 밀어- 하고 카트를 떠넘겼다. 빵을 몇 개 고르려다 말고 도로 내려놓았다. MEAT 라 쓰인 냉장 진열대 앞에 섰다. 이렇게 된 거, 이왕이면 저녁은 맛있는 걸로 먹을까. 어차피 혼자가 아닌 둘이니까. 색깔이 좋아보이는 고기 두 팩을 들고 민준에게 물었다. 둘 중에 뭐 먹을까? 민준이 옆으로 다가와 고기를 같이 고르기 시작했다. 전에 소고기 먹었으니까 이번엔 돼지고기 먹을까? 그래-
# MOSQUITO CREEK CAMPGROUND, ICEFIELD PARKWAY
레이크 루이스로부터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따라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는 있는 모스키토 크릭(Mosquito creek) 캠핑장. 민준이 텐트를 빌린다고 해서 렌트 가게를 찾느라 시간을 보내서 오후 중반이 넘어 도착했다. 남아있는 캠핑 사이트가 서로 멀찍이 떨어진 곳 밖에 없었기에 민준은 엄청 아쉬운 티를 냈지만 송이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민준은 계속 송이가 있는 곳으로 들락날락거렸다. 텐트 치는 방법을 물어보고-그렇게 여러 번을 설명해줬는데- 뭐가 없다며 빌리러 오고, 되돌려준다고 또 오고.
“이제 좀 조용해졌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캠핑장에 도착한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여유가 찾아왔다. 캠핑장 옆을 따라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자꾸 찾아와서 기웃거리던 민준이 떠올라서 피식 웃었다. 어울리지 않지만 귀엽다.
본의 아니게 꼬리를 하나 더 달고 왔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최대한 만끽해야 했다. 송이는 어제 읽다만 책을 꺼냈다. 비에 젖어 종이 끝이 쪼끌쪼끌했다. 들러붙은 책장을 찢어지지 않게 조심히 떼어내어 읽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읽었더라.
“아.”
지난 번에 읽은 로맨스 소설과는 달리 어딘가 어려운 것 같은 이번 책은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불쑥, 천송이- 하고 부르면서 찾아올 것 같은 기분 때문일 수도. 아무튼, 책장을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다. 적당한 온도의 바람이 엷게 불어와 뺨에 닿으니, 긴장이 풀리면서 나른한 기분에 잠이 왔다. 턱을 괴고 살짝 눈을 감았다.
“Excuse me.”
얼마 지나지 않아 굵은 목소리에 눈을 떴다. 민준이 그렇게 인사하지 않을 게 뻔하지만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근처에서 쭈뼛거리며 서 있는 밝은 갈색 머리의 외국인 남자가 Hi- 하고 한 번 더 인사를 한다.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보니 Fire 어쩌고 저쩌고. 라이터를 빌려달라는 것 같았다. 지난 번에 점화 라이터가 없어서 이번에 새로 사왔는데 개시도 전에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게 되었다. 송이는 흔쾌히 라이터를 빌려주었고, 덕분에 잠은 달아났다.
몇 시지, 슬 기온이 내려가는 것 같아 얇은 아우터를 챙겨 입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갈색 머리의 젊은 남자가 라이터를 되돌려주러 왔다. Thank you. You’re welcome. Are you here alone? Umm… Yes. Oh, Okay. Have a good time. You, too.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남자가 돌아가는 걸 보며 혼자 왔다고 대답한 것이 거짓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혼자 오길 다짐했고, 혼자 왔고, 혼자이고 싶었지만…
“뭐야?”
“……?”
양반은 못 되려는지, 민준이 뒤에서 어슬렁 나타났다. 송이가 방금 외국인 남자와 이야기하는 것부터 봤는지 뭐야, 이 두 글자로 상황 설명을 요구한다.
“아, 라이터 빌려달래서.”
“…그래?”
별 거 아닌 일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미심쩍다. 민준은 이미 길을 돌아 사라지고 없는 그 남자를 한동안 쳐다보고는 손에 가득 들고 온 것들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마트에서 샀던 음식들이었다.
“벌써 저녁 먹게?”
“아직도 적응 안 됐겠지만, 벌써 6시 넘었어.”
“그래? 시간 엄청 빠르네.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아무 것도 안 하려고 캠핑하는 거라며.”
“그 캠핑도 너 때문에 시간 다 뺏기고 귀찮게 되었지.”
민준이 캠핑을 따라온 것에 대해 송이가 아까부터 계속 투덜대자, 민준이 와, 진짜 너무하네- 하고 나무 젓가락을 테이블 위로 내던진다. 진짜 내가 너무 했나. 송이는 민준이 섭섭해할까봐 얼른 화제를 돌려 캠핑장 입구에 있는 장작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말은 잘 듣는다. 민준이 다녀오는 동안 송이는 장 본 것들의 포장을 뜯고 테이블 위를 정리했다. 큰 캠핑장 입구까지 다녀오려면 꽤 멀어서 한참 있다 나타난 민준은, 장작까지 한아름 갖고 오느라 힘들어보였다.
바비큐 그릴 아래 장작 몇 개를 넣고, 민준에게 불을 붙여달라고 했다. 너 잘 하잖아, 왜 나 시켜. 무섭단 말이야. 무서우면 혼자선 어떻게 했냐. 네가 있으니까 굳이 내가 할 필요 없지. 불 붙이는 것도 시키고, 채소와 과일도 씻어오라고 시켰다. 연기가 많이 나서 눈을 못 뜨겠다는 핑계로 고기 굽는 것도 민준을 시키고 가만히 테이블 앞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불과 며칠 전, 재스퍼 어느 호수가에서 모든 것이 어설펐던 처음과는 달리, 분명 여유가 있었다.
그 때로부터 며칠이 지나도 실감나지 않았던 것들이, 분명 조금씩 실감이 나고 있었다. 우리가 이 곳에서 만났다는 사실.
“천송이 네가 이렇게 부려먹을 줄 알았으면 안 따라오는 건데.”
“따라온 거 아니라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그렇다는 거지만, 지금이 마치 어느 주말, 서울에서의 한 자락처럼 느껴졌다. 마트에서 카트를 끌며 뭘 먹을지 고민하고, 가까운 곳에 들릴 수 있는 산 속 캠핑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여행이 아닌 일상의 느낌. 맛있는 음식, 빨간색 캔 콜라, 재미있는 걸로 따지자면 따분함에 가까운 대화들, 연기로 빨개진 눈, 이따금 보이는 옅은 웃음. 그 일상의 느낌이, 여행보다 더 설레게 다가왔다.
더더욱 확실하게 실감이 났다. 우리가 ‘또 다시’ 만났다는 것. 그리고 이 여행의 설렘보다 더한 설렘이 일상으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는 것…
너무 늦어져서 그냥 중간에 왔습니다 ㅠㅠ
저는 잘 지냅니다. 현일이 너무 바빠서 글 쓸 시간이 없었네..
쓰다보니 19편 분량이 좀 많기도 했고... 다 쓰고 올리고 싶었는데 일단 나눠서 올려
19-2는 이번 주 내로 온다 진짜!!!!
먼지들 건강 관리 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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