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남자와 별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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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기(靑春記) 20

SCIENCE AND LOVE 2016. 12. 20. 12:54

 

청춘기(靑春記)

- Youthology

# 20

 

 

 

 

 

 

# MOSQUITO CREEK CAMPGROUND, ICEFIELD PARKWAY

 

 

 

“천송이-”

“……”

 

 

홀로 타도록 내버려두고 왔던 송이의 캠프 파이어는 약간의 불씨만 남기고 거의 다 꺼져 있었다. 송이가 시끄럽다고 했던 옆 사이트의 무리는 아직도 파티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송이와 민준 두 사람은, 이제 송이의 캠핑 사이트 한 켠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서로를 볼 순 없었다. 송이는 자신의 작은 노란색 텐트 안에, 민준은 그 문 밖에 있었으니까.

 

 

“미안해.”

“……”

“그러니까 그게… 네 동의 없이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

“하…”

 

 

텐트에 비치는 민준의 그림자가 긴 한숨을 쉰다. 송이는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덩달아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게 아닌데. 진짜 그런 게 아닌데.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겠다.

 

 

“……”

 

 

 

 

어쩌면 오늘쯤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이 여행 중 그와 키스를 한다면. 어쩌면 그 때 그 순간이라고도. 그가 이미 하늘이 아닌 저를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던 때에.

 

그래서 놀라고 당황스러웠던 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숨을 쉬는 방법을 잠깐 잊었던 것 빼곤 어색함도 없었다. 늦었지만 서두르지도 않고, 꼭 맞추어진 입술을 통해 서로를 천천히 그리고 길게 느꼈다. 모닥불 때문인지 미칠 듯이 뛰는 심장 때문인지 아니면 볼을 감싸고 있는 뜨거운 민준의 손바닥 때문인지, 얼굴이 잔뜩 달아올랐을 때쯤, 입술이 떼어졌고 그제서야 감은 눈을 뜰 수 있었다. 민준의 떨리는 눈동자도, 그제서야 볼 수 있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에 송이는 저도 모르게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그러자 민준이 한 번 더 입을 맞추었다.  쪽- 짧은 입맞춤이었지만 그 입술의 큰 마찰음이 불현듯 머리를 세게 때리는 것 같았다. 어지러웠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

‘……’

 

 

반짝이는 하늘을 그대로 다 담은 눈을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분명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가야 될 것 같아.’

‘……?’

 

 

키스의 떨림이 아직 진정되지도 않았는데, 아니 진정이 안되었기 때문에, 이성과 감성 모두 정리하지 못한 채로 민준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얼떨결에 몸을 일으켜 길을 비켜준 민준은 처음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치였지만 곧, 빠른 걸음으로 돌아가는 송이의 뒤를 쫓아갔다. 민준이 아무리 송이를 불러세우려 해도 송이는 대답 한 번 하지 않고 자신의 사이트로 돌아와 텐트 안으로 도망치듯 쏙- 들어가버렸다. 텐트 입구도 지퍼로 끝까지 다 잠가버리고.


 

 

 

 

그 뒤로 지금까지, 텐트를 사이에 두고 대치 상태인 것처럼 앉아 서로의 그림자만 보고 있었다. 입술은 아직도 뜨겁고 얼얼했는데, 이제는 열기가 아닌 서늘함만이 주변에 감돌았다. 그렇게, 불확실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불확실. 불확실한 감정의 정체는, 그냥 그 ‘불확실’ 그 자체였다.

 

 

“미안해, 잘못 했어.”

“……”

“응? 천송이.”

“…아니야. 네가 잘못하고 그런 거.”

 

 

민준이 송이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는지. 한참이 지난 후에 송이는 겨우 대답을 했다. 대답을 해줬다는 자체만으로 민준의 안도가 느껴졌다.

 

 

“네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그…키ㅅ… 아무튼 같이 한 거고, 또 좋기도 했고…”

“……”

“아… 나 뭐라는 거니.”

“…괜찮아. 얘기 계속 하고 싶으면 해.”

 

 

민준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미안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횡설수설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만 했다. 그러나 민준은 차분히 송이의 말을 들어주었고, 조금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나 정말 이 곳에서 도민준 널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그건 당연히… 나도 그래.”

“언젠가 너랑 마주치게 되는 상상은 그렇게 많이 했으면서 말이야.”

“……”

“…왜 이번엔 너도 그렇다고 안 해? 넌 안 그랬어?”

“…아니, 나도 그랬어.”

 

 

‘나도.’라고 그저 동의하는 것 밖엔 할 줄 모르는 민준이 탐탁지 않았었지만, 막상 그 말마저 안 해주니 좀 서운했다. 티를 내니 민준이 픽 웃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서로가 다시 만나게 되는, 긴 공백 동안 잊지도 않고 했을 수많은 상상들.

 

 

“어쨌든… 그 상상했던 일과 상상도 못했던 일이 동시에 일어나니까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 많이.”

“응, 이해해.”

“네가 이러는 게… 그냥 옛날을 떠올려서 그런 거 아닌가 싶고. 아니 뭐, 옛날에 뭐가 있었단 말은 아니지만…”

“……”

“…여행 때문에 설렌 마음을 잠깐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가장 설레던 순간에 끝나버린 이야기를 그리워하며 미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낯선 곳에서의 기대와 흥분으로 인한 아드레날린을 단순한 호감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와 만나 예상하지 못한 동행을 하면서도 의심했고, 불안해했다. 우리의 타이밍이 또 어디서 어긋나버릴지 경계했다.

 

 

“천송이-”

“……”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

 

 

그럼에도 믿고 싶었다.

 

 

“……아니.”

 

 

또 한 번 기약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해도, 그게 설사 과거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 해도, 내가 아닌 다른 일로 들뜬 마음을 착각하는 것이라 해도…무뚝뚝한 표정 속의 따스한 그 눈빛을 믿어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확신이 없었음에도 ‘아니’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이어 크게 숨을 들이쉰 반듯한 그림자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춰오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알아.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게 많다는 거.”

“……”

“그러니까 재촉하거나 급하게 굴지 않을게. 천송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

“혼자 있고 싶으면, 또 혼자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얇은 벽 너머 들리는 민준의 목소리가,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가 너무 다정하고 달아서, 그 어떤 말도 없이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또 한 번 코 끝이 찡해졌다.

 

 

“…생각해 볼게.”

 

 

끌어 모은 무릎에 얼굴을 기대며 겨우 대답했다. 너무 매몰차게 도망치듯 와버린 게 이제 와서 조금 미안해졌다.

 

 

“……”

“……”

 

 

무엇이든 확실한 결론을 내리긴 일렀다. 다시 만난 지 이제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뿐이고, 그간의 시간들은 그보다 훨씬 길었으니까. 오랜 시간 흩어지고 어질러진 감정들에게 시간을 주고, 천천히 이해해야만 했다.

 

 

“늦었는데… 자.”

“…응.”

“그럼, 나 갈게.”

“……”

“…잘 자.”

 

 

잠시 조용히 앉아있던 민준은 이제 남은 것을 송이에게 맡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망하고 어색한 이 상황이 어서 끝나기를, 민준이 가기를 바랐는데, 막상 진짜 간다고 하니까 또 한 번 변덕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시야에서 사라진 그림자에 조바심이 났다.

 

 

“자, 잠깐만!”

“……?”

 

 

송이는 일단 민준을 불러놓고 5초간 고민을 했다. 민준이 돌아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송이는 텐트 입구의 지퍼를 아주 살짝만 열었다.

 

 

“…왜?”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돼?”

“……?”

“…저기 옆 사이트에 사람들 때문에…”

“어, 내가 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고 올까?”

“아니, 사실은… 아까 저 사람들이 나보고 같이 놀자고 했는데, 내가 다른 일행 있다고 했거든…”

“아……”

“…그 사람들 또 올까봐…”

 

 

송이는 열린 틈 사이로 눈만 빼꼼히 내밀고 민준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 외국인 남자들이 제가 혼자 있을 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민준이 가버렸을 때 혹시나 또 찾아오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다. 민준은 송이의 말을 듣고, 옆 사이트 쪽을 한 번 쳐다보더니 그대로 그 자리에 다시 앉는다.

 

 

“그래, 알았어. 그럼 좀 더 있다 갈게.”

“…미안.”

“아니야. 어차피 너 때문에 여기 있는 건데, 뭘.”

“……”

 

 

민준이 맨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는 걸 보고, 송이는 도로 텐트 천막 뒤로 숨었다. 지퍼를 도로 채울까 했지만, 너무 벽을 치는 것 같아 조금의 틈은 남겨두었다.

 

 

“……”

“……”

 

 

이제는 볼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수많은 별들이 빛을 내고 있는 밤하늘을 작은 지붕으로 가려버렸다. 그 밤하늘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보는, 다시는 오지 않을 지도 모르는 순간들도 그냥 흘려보내고만 있었다. 후회할 지도 몰랐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솔직한 마음을 단 번에 인정하지 못하는 서로의 몹쓸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진다는 사실도 이해하고 있었다.

 

 

“……”

“……”

 

 

그래서 밤이 깊어가도록 아무 말이 없어도 괜찮았다.

 

 

 

 

 

 

 

 

 

 

 

 

 

 

 

 

 

 

 

#

 

 

 

술 마시고 시끄럽게 떠들던 송이의 옆 캠핑 사이트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 민준은 그 쪽으로 직접 가서 한 번 더 그들의 파티가 끝났는지 확인했다. 사람들은 모두 텐트 안에 들어가 있고 움직임도 없었다. 송이에게로 돌아 와 이제 그 사람들 다 자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송이는 대답이 없었다. 살짝 열린 텐트 입구 사이로 보니 송이는 이미 잠이 들어 있었다. 민준은 텐트 문을 완전히 닫아주고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 자고 있는 걸 내버려두고 가기가 꺼려졌다. 아예 제 텐트를 가지고 와서 옆에서 잘까, 했지만 그건 또 송이가 싫어할 것 같았다. 불편한 마음을 안은 채 자신의 사이트로 돌아갔다.

 

쉽사리 잠들지는 못했다. 딱딱하게 냉기가 도는 땅바닥과 무섭도록 고요한 공기, 그리고 입맞춤, 또 고민이 많아보이던 송이의 말들, 미안함… 잠자리를 뒤척이게 한 이런 수많은 이유들로 해가 뜰 때까지 채 몇 시간도 자지 못했다.

 

 

 

 

 

#

 

 

아침 무렵, 텐트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에 깨어났다. 피곤했지만 잠을 깨려 세면장으로 가서 세수만 간단히 하고 바로 송이를 찾아갔다. 아직도 자고 있을 것 같긴 했지만, 별 일 없나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자리엔 아무 것도 없었다. 노란색 텐트도, 큰 배낭도,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던 책도, 천송이도. 남아있는 건 다 타버린 장작의 재뿐이었다. 썰렁한 벤치에 홀로 앉아 송이가 좋다고 말했던 숲 속의 아침 공기를 오랫동안 마셨다. 밤새 했던 걱정보다는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그리고 그녀를 존중하기로 했다.

 

 

 

 

 

 

 

 

 

 

 

 

 

 

 

 

 

 

 

 

 

 

 

 

 

 

 

 

# SOMEWHERE, ICEFIELD PARKWAY

 

 

“여기 와서 히치하이킹 하는 여행객들 많이 봤는데, 한국인은 처음 본 것 같아서 그냥 못 지나가겠더라구요.”

“정말 감사합니다. 기약 없이 걷기만할 뻔 했어요.”

 

 

대중교통이 따로 없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에선 많은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히치하이킹을 택한다. 송이 역시 그랬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생각보단 어려웠다. 차들은 애타는 손길을 무시하고 지나가기 일쑤였고, 혹시나 누군가가 태워준다고 해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혼자 길을 나선 것을 후회할 뻔도 했다. 무작정 캠핑장을 떠나 계속 걷기만 한지 1시간. 송이는 젊은 한국인 부부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거예요?”

“…네.”

“우와- 대단하네요!”

“대단한 건 아닌데… 암튼 감사해요. 제가 두 분 여행하는 데에 방해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에이, 아니에요. 사람 만나고 이러는 묘미도 있는 거죠.”

 

 

결혼한 지 10년 째라는 30대 후반의 부부는, 신혼 여행 이후 처음 함께 해외 여행을 왔다고 했다. 초등학생인 아이를 데리고 올까 하다가 친정 어머니께서 봐주시기로 해 결혼 10주년 여행을 둘이서만 올 수 있었다, 로키 국립공원과 가장 가까운 공항이 있는 캘거리에서 밴프로 와 일정을 보내고 재스퍼로 가는 길이었다- 등의 이야기를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의 쭉 뻗은 길을 달리며 들었다. 송이도 여태까지의 여정들을 말해주고 좋았던 곳을 서로 공감하고 공유했다.

 

활달하고 수다스러운 수연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 덕분에 어색하지는 않았다.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텅 비어버린 사이트를 보고 허무해 할 민준의 모습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잠깐은 잊기로 했다. 말도 없이 이렇게 와버린 것에 대해선 당연히 미안했지만, 한편으론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재촉하거나 급하게 굴지 않을게. 천송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혼자 있고 싶으면, 또 혼자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저에게 민준이 시간을 준 거라고 여겼다. 이미 3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지만, 멈춰 있었던 시간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 시간을 일으켜야 했다. 그래서 또 한 번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지막, 혼자의 시간.

 

 

“우리는 오늘 중간 중간 몇 군데 들렸다가 바로 재스퍼로 갈 건데. 송이씨는 어디로 가요?”

“저는 내일 재스퍼로 갈 거거든요. 괜히 저 신경 쓰지 마시고 가시는 곳까지만 태워주시면 돼요.”

 

 

차를 얻어 탄 신세이기 때문에 그냥 차 주인이 가는 대로 따라 가기로 했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곳에 내려 구경을 하고, 또 차를 얻어 타고 이동하고. 이렇게 가다 보면 기차에서 내렸던 곳, 재스퍼에 도착할 것이다. 고맙게도 출발한 곳에서 멀지 않은 보우 서밋(Bow Summit)을 들렀다가 이 길의 중간 지점인 콜롬비아 아이스필드(Columbia Icefield)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대신 사진 기사 노릇을 해주고.

 

 

보우 서밋으로 가는 길은 가벼운 산책 코스 정도였다. 아이스필드라는 이름과 걸맞게 공기는 차가웠지만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다보니 괜찮았다. 나름 정상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연옥색의 페이토(Peyto) 호수가 나타났다. 여기 와서 봤던 호수들의 물빛깔들이 어땠는지 기억이 자세히 나지 않았다. 어쨌든, 또 새롭다는 말이다. 호수의 아래 편에는 넓게 펼쳐진 빙하가 있다. 하얀 겨울이 만들어낸 푸른 여름. 도민준은 어디로 갔을까. 너도 보았으면 좋을 텐데.

 

 

“송이씨, 사진 또 부탁해도 될까요?”

“그럼요!”

 

 

꽤나 비싸보이는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들고 다정한 부부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좋은 기계이니 사진도 더 잘 찍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송이씨도 찍어줄게요. 우리 카메라로 찍고 나중에 메일로 보내주면 되겠다. 괜찮아요! 저는 그냥 폰 사진이면 돼요- 송이는 덕분에 단독 촬영의 기회도 얻었다. 호수와 빙하를 배경으로 몇 컷. 수연은 카메라를 다루는 것에 익숙한지 핸드폰으로도 신경 써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봐봐요, 잘 나왔다.”

“우와, 감사합니다.”

“내 카메라보다 잘 나온 것 같애! 모델이 예뻐서 그런가봐.”

“하하… 아니에요. 별 말씀을.”

 

 

사진을 찍어준 수연과 핸드폰 사진첩을 확인했다. 사진을 몇 장 넘기며 잘 나왔니 어쩌니 이야기를 하다 예전에 찍은 다른 사진이 나와 잠시 당황했다. 얼마 전 민준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찍은 셀카 사진. 송이는 놀라서 정말 티가 나도록 급히 핸드폰 화면을 꺼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수연이 물어온다. 

 

 

“엇, 누구예요?”

“아……”

“뭐 게하에서 만난 사람, 그런 거?”

“…친구요.”

“친구요?”

“대학교 친구인데… 여기서 우연히 만났어요.”

“어머, 진짜요? 엄청난 우연이다.”

“네… 엄청난 우연이죠.”

 

 

수연은 남편에게 가서 호들갑스럽게 그대로 이야기를 전한다. 여기서 대학교 친구를 우연히 만났대. 다른 곳도 아닌 캐나다에서! 이 넓은 곳 중 같은 곳에, 같은 날에!

 

 

“……”

 

 

송이는 기차에서의 믿기지 않는 재회를 다시금 떠올렸다. 혼자였어야 했던 그 자리, 혼자여야 했던 사진, 혼자여야 했던 밤. 그러나 이제는 혼자임을 생각할 수 없게 된 로키.

 

세 사람은 정상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낸 후, 주차장으로 돌아가려 내리막길을 걸었다. 송이가 부부의 뒤를 따라 가고 있을 때, 수연이 뒤로 슬금 와서 말을 건다.

 

 

“아까 그 사진 속 친구, 너무 잘생겼더라.”

“아… 걔가요? 하하.”

 

 

밝게 운을 띄우는 그녀가 더 이상 민준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길 바랐지만, 수연은 송이의 눈치를 살핀 후 정확하게 송이의 애매한 표정을 읽어낸다.

 

 

“…그냥 친구 아니죠?”

“네?”

“같이 사진 찍은 모습이 보통 다정한 게 아니던데.”

“아, 아니에요. 그냥 오랜만에 본 거라…”

“에이… 뭐 아무튼. 이제라도 잘 해봐요. 보통 인연도 아니구. 정말 잘 어울리던데.”

“……”

“좋겠다, 청춘.”

 

 

 

어디를 시작이라고 해야하려나.

 

생각만으로도 두근거리는 것이 청춘이라면, 나의 청춘의 시작은 그를 제일 처음 만났던 추운 초 봄의 학교 운동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야, 라고 예의 없게 나를 부르던 민준이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고 입을 맞춰줄 때까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이야기는 늘 나를 기쁘게 하고, 설레게 하고, 또 슬프게 했다. 앞으로 남은 이야기는, 우리의 청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

 

어쩌면 나는, 이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것이 두려운 것일 지도 모른다.

 

 

 

 

 

 

 

 

 

 

 

 

 

 


 

2016년이 가기 전에 또 올 수 있을까....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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